태국 사법당국이 지난해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피타 림짜른랏(43) 전 전진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기각했다. 군부의 어깃장 때문에 집권에 실패하고 국회의원직 직무 정지로 정치생명마저 위태로웠던 피타 전 대표는 기사회생하게 됐다. 그가 하원으로 복귀해 다시 전진당을 이끌 가능성이 커지면서 태국 민주화와 정치 개혁 바람도 다시 거세게 불 전망이다.
24일 태국 공영 PBS에 따르면 태국 헌법재판소는 이날 “iTV는 더 이상 미디어 사업체로 볼 수 없다”며 “헌법재판관 9인 중 8인이 이처럼 판단함에 따라 그가 헌법과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푸냐 우차촌 판사는 “피타 전 대표의 국회의원 지위도 끝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 하버드대 출신인 피타 전 대표는 지난해 왕실모독죄 개정, 징병제 폐지 등 과감한 개혁을 주장하며 태국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그의 인기를 바탕으로 전진당은 지난해 5월 14일 치러진 총선에서 하원 500석 중 151석을 얻어 제1당이 됐고, 피타 전 대표 역시 총리 후보에 올랐다. 그러나 군부와 보수 세력이 장악한 상원(250석)의 반대로 상·하원 합동 투표에서 과반(750석 중 376석)을 얻지 못하면서 집권에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친군부 진영은 피타 전 대표가 작고한 부친에게서 미디어 기업 iTV 주식 4만2,000주를 물려받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언론사 사주나 미디어 주식 소유자는 공직에 출마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선거관리위원회는 이 사건을 헌재에 넘겼다.
피타 전 대표와 전진당 측은 “방송사가 2007년 이후 방송을 중단한 만큼 문제없다”며 자신을 제거하려는 군부의 정치적 음모라고 주장해 왔다. 선거법 위반으로 결론 날 경우 20년간 정치 활동이 제한된다. 당시 헌재는 판결이 나올 때까지 피타 전 대표의 국회의원 직무를 정지했는데, 이날 판결로 의원직을 되찾으면서 정치 활동을 이어가게 됐다.
그가 정치판으로 되돌아오면서 태국 내 민주화 열풍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날 헌재 앞에서 판결을 기다리던 피타 전 대표의 지지자들은 결과가 나오자 환호성을 질렀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지난해 그의 집권이 물거품이 되자 민주주의 부활과 군주제 개혁 등 변화를 꿈꾸며 전진당에 표를 던졌던 시민들은 한 달 넘게 시위를 벌였다. 2020년 태국을 뒤흔든 반정부 시위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피타 전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빠른 시일 내에 의회 복귀 절차를 밟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다음 선거에 다시 나설 것인가’라는 질문에 "물론(Certainly)"이라고 답하며 총리직 재도전 의지를 내비쳤다. 당시 그는 “지난 총선은 태국 민주주의 여정의 중추적 순간이자 태국 사회와 청년들에게 희망의 정치를 보여주는 획기적 전환점이 됐다”며 “기득권 세력은 변화 열망을 막을 수 없다. 그들도 마음을 열고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다만 전진당 앞에는 아직 넘어야 할 관문이 있다. 헌재는 오는 31일 전진당의 왕실모독죄(형법 112조) 개정 공약에 대해 판결할 예정이다. 앞서 전진당이 해당 법 개정을 추진하자 보수 단체가 “태국의 입헌군주제를 전복하려는 시도로, 태국 헌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제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