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4월 총선을 앞두고 '2호 인재'로 영입한 이재성(53)씨는 넷마블 이사와 엔씨소프트 전무를 지내는 등 게임 업계에서 잔뼈가 굵다. 그런 그가 23일 민주당의 총선 1호 정강 정책을 발표하며 e스포츠(프로 게임 대회)의 중요성을 강조해 업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23일 한국일보와 만난 이씨는 "e스포츠엔 엄청난 잠재력이 있지만 아직 하나의 벤처 스타트업에 불과하다"며 "정치가 스타트업을 지원하듯 e스포츠 산업에 관심을 두고 지원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한국이 'e스포츠 종주국'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정부가 인프라 투자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날 한국일보와 만난 이씨는 'e스포츠 진흥에 관한 법률' 조문부터 꺼내 보였다. 그는 "현재 법률은 e스포츠를 진흥하겠다는 원론적 목표를 제외하고는 내용이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법률의 상당 부분은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지게 만들어졌다는 것. 그는 "그동안 정치권에선 e스포츠에 대해 산발적 관심만 보였을 뿐 체계적 지원을 할 방법을 내놓지는 못했다"고 봤다.
이씨는 한국의 e스포츠가 절정기에 이른 시점을 '광안리 대첩'으로 짚고 당시의 유산을 이어오지 못한 것을 매우 아쉬워했다. 광안리 대첩이란 2004~2010년 액티비전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를 종목으로 하는 프로리그가 부산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열리며 대규모 이벤트가 된 것을 말한다. 하지만 리그의 인기가 사그라들고 후속작 출시와 함께 게임사 지원이 줄어들면서 그 기세를 잇지 못했다.
이씨는 현재 라이엇게임즈의 '리그 오브 레전드(LOL)'를 중심으로 e스포츠 대회가 이어지고 있지만 비슷한 함정에 빠질 것을 걱정했다. 지난해에는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처음 공식 종목으로 열렸고 한국에서도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세계대회(월드 챔피언십, 일명 '롤드컵')가 열리면서 이목이 집중된 상태다.
하지만 정작 내부 사정이 좋지만은 않다. LOL 대회 중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LOL의 한국 리그(LCK) 참가팀들은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7일에는 일부 게임단이 LCK 운영 법인에 수익 배분 확대를 요구하는 공동 입장문까지 냈다. 게임 제작사이자 리그 주최사인 라이엇도 23일 전체 인력의 11%를 줄인다고 밝혀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 비대면 바람을 타고 크게 커졌지만 엔데믹화 이후에도 지속 가능한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이씨는 e스포츠가 게임 제작사의 선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재 구조에서 벗어나도록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과거 광안리 대첩의 중단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결국 블리자드와 게임단 모두 승자가 없는 결말이었다"면서 "리그의 팬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 게임단과 게임사 간 갈등을 해소하고 우호적 관계로 함께 발전하는 생태계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리그 운영권을 쥔 라이엇게임즈와 LCK 입장에서 이는 불편한 제안일 수 있다. 이씨는 "정부 지원을 늘려 인프라를 확충해 게임과 e스포츠 산업의 수익성이 좋아질 수 있다면 게임사도 만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화질을 끌어올리고 중계 시점을 다양화하는 등 기술을 발전시켜 광고 및 후원 수입을 늘리고 △e스포츠 산업 관계사에 대한 세제 지원을 늘리고 △전설적 업적을 남긴 선수를 위한 기념관·박물관 대규모 야외 경기장 등을 설치해 관광 및 부가 수입을 확대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민주당이 이를 총선 대비 정강 정책에 포함시켰기에 앞으로도 e스포츠 산업에 대한 지원 대책을 늘리는 데 틀거리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e스포츠에 대한 지원책이 민주당뿐 아니라 여러 정당에서 나오고 정책 경쟁으로 연결되길 바란다"며 "청년들의 삶의 활력소가 된 e스포츠가 계속 발전할 수 있게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고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