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가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뜨거운 해였다는 사실이 수치로 확인됐다. 지난해 지구의 평균 기온은 인류가 화력발전을 대량 사용하기 시작한 산업화 이전보다 1.48도 높았다. 당장 녹색 전환에 속도를 내지 않는다면 ‘1.5도 상승만큼은 막아내자’는 파리협정의 목표가 조만간 깨질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이 나온다. 1.5도는 인류가 멸종 위기를 피하기 위해 지키기로 한 마지노선이다.
유럽연합(EU)의 기후변화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는 지난해 지구 평균 기온이 14.98도로, 1850년부터 시작된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였다고 9일(현지시간) 밝혔다. 지난해 기온은 평년(1991~2020년)에 비해 0.60도 높고, 앞서 세계적 폭염에 역대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됐던 2016년보다도 0.16도 높다.
특히 지난해는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365일 내내 지구 일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도 이상 높았다. 관측 역사상 첫 기록이다. 한 해의 절반에 달하는 173일간은 일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높았다. 11월에는 2도 이상 높았던 날이 이틀 있었다. ‘2도 상승’ 또한 전례 없는 일이다.
지난해 기온 상승은 엘니뇨가 활성화된 6월부터 본격화해 겨울까지 이어졌다. 엘니뇨는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높은 상황이 5개월 넘게 지속되는 현상이다. 이로 인해 7, 8월에는 지구상 어느 지역에서든 가장 더운 여름을 보내야 했다. 한겨울이던 지난달도 월평균 13.51도로 역대 가장 더운 12월로 기록됐다. 산업화 이전 12월과 비교하면 1.78도 높다.
바다도 뜨거웠다. 지구 해수면 평균 온도는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매월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남극의 해빙 면적도 사상 최저 수준으로 줄었다. 지난해 월별 해빙 감소 기록은 8번 경신됐다.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곳곳에 기후재난이 끊이지 않았다. 캐나다·하와이 등에서 대형 산불이 나면서 지난해 산불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전년보다 30% 늘었다. 아시아와 남미, 북미 등은 전례 없는 태풍·사이클론 발생으로 피해를 봤다.
연구진은 지난해 기온 상승폭이 예상을 뛰어넘었다고 설명했다. 1979년 이래 10년에 0.2도꼴이던 기온 상승폭이 급격히 커졌기 때문이다. 2016년 폭염의 경우 엘니뇨가 한창 심화한 기간에 발생했지만, 지난해는 엘니뇨가 시작 단계였다는 점에서도 이례적인 결과다.
올해도 기온 상승이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해까지 대기 중에 누적된 이산화탄소 농도는 419ppm으로 전년 대비 2.4ppm, 메탄은 1,902ppb로 11ppb가 각각 높아졌다. 이처럼 온실가스 상승 그래프가 꺾일 줄 모르는 상황이라 당장 1, 2월 월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엘니뇨가 올해 본격화한다는 점도 위험 요인이다.
카를로 부온템포 C3S 이사는 “지난해 관측한 상황은 기후변화가 얼마나 많이 진행됐는지 극적으로 보여준다”며 “기후위기를 성공적으로 막아내려면 기후 데이터를 통해 미래를 대비하고 경제를 시급히 탈탄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