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명 모여 '파시스트 경례'…극우 행사에 이탈리아 발칵

입력
2024.01.09 15:00
"전사한 모든 동지 위해" 구호 제창
전형적인 네오 파시스트 집회 비판
야당, 정부에 설명 촉구… 검찰 고발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서 군중 수백 명이 과거 파시스트들의 경례를 자행해 파문이 일고 있다. 유럽 전역에서 세력을 키워가는 극우 진영의 일단이 드러난 셈이다.

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공영 라이(RAI)방송에 따르면, 전날 저녁 로마 동남부 아카 라렌티아 지역에서 극우 세력의 정치 행사가 열렸다. 그런데 행사에서 군중들이 파시스트의 상징인 ‘로마 경례(손바닥을 아래로 한 채 팔을 곧게 뻗는 경례)’를 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 경례법은 무솔리니 통치 시절에 쓰이던 것으로 ‘파시스트 경례’로도 불린다. 이들은 “전사한 모든 동지를 위하여”라는 구호에 “현재(Presente)”를 복창하며 세 차례 이 경례를 했다. 로이터통신은 “전형적인 네오 파시스트 집회”라고 짚었다.

이 행사는 1978년 1월 7일 이탈리아 극좌 무장 세력의 총격에 숨진 극우 청년 3명의 46주기 추모식이었다. ‘납의 시대’로 불리는 당시 이탈리아는 극좌·극우 무장 세력이 무력 충돌을 빚는 정치적 혼란기였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형된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지지자들은 46년 네오 파시스트 정당 이탈리아사회운동(MSI)을 창당하고 극좌 진영과 대립했다. 78년 총격에 숨진 청년 3명도 MSI 소속이었다.

이후 이탈리아 파시즘 추종 세력은 매년 아칸 라렌티아의 옛 MSI 당사 앞에서 청년 3명의 추모식을 가졌다. 95년 MSI가 당내 강경파와 온건파 간 분열로 해산된 후에도 극우 세력은 국민동맹(AN) 등 정당을 창설해 파시즘 계보와 추모식을 이어 왔다. 현재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속한 집권 여당인 이탈리아형제들(FdI)도 MSI의 후신으로 간주된다.

이탈리아 야당은 이번 경례 논란에 즉각 반발했다. 최대 야당인 민주당(PD)의 엘리 슐라인 대표는 "(무솔리니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1924년으로 돌아간 것 같다"며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특히 멜로니 총리와 FDl에 입장 표명을 촉구했다. 좌파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M5S)은 추모식 참여자들의 극우 표현을 처벌해달라는 고발장을 로마 검찰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후 이탈리아는 파시스트 활동을 처벌하는 법안을 채택했으나, 적용 조건이 매우 엄격해 파시스트 경례 행위만으로 처벌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2022년 10월 무솔리니 탄생 100주년 행사에서도 지지자 수천 명이 파시스트 경례를 해 파문을 일으킨 적 있다.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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