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우리나라가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으로 선출되어 2027년까지 임기를 수임하게 되었다는 낭보가 프랑스 파리로부터 전해졌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세계유산의 등재를 결정하고, 등재된 유산의 보존관리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논의하며, 국가 간 조율과 협력을 도모하는 기구로서 세계유산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위원회이다. 195개 세계유산협약 가입국 가운데 단 21개국으로만 구성되기에 선출되기도 어렵고 그 역할이 막중하다.
세계유산위원국은 위원회에서의 발언권과 투표권을 가지며, 세계유산을 둘러싼 보존, 등재, 정책의제 등에 관한 면밀한 검토를 바탕으로 논의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높은 전문성이 요구된다. 물론 우리는 세계유산의 등재와 보존관리에 있어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 석굴암·불국사가 등재된 1995년부터 현재까지 총 16건의 세계유산을 등재하는 과정에서 정책 성과와 학술 역량을 축적해 왔으며, 개발 압력과 기후 변화 등의 도전적 상황 속에서도 지속적인 보존관리를 통하여 세계유산의 가치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 기다리고 있는 세계유산 관련 이슈들을 살펴볼 때 대한민국의 위원국 활동이 녹록지 않을 것이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메이지 근대산업시설은 등재 조건인 '강제 동원을 포함한 전체 역사를 알리기 위한 노력'이 충분하지 않으며, 한 술 더 떠 일본 정부가 비슷한 사례인 사도광산의 등재도 시도하는 만큼 적절한 대처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러-우크라 전쟁으로 인해 위험에 처한 우크라이나의 오데사 역사도심의 보존관리 현황, 아프리카 노예무역 관련 유산의 등재 여부 등이 앞으로 세계유산위원회의 의제로 다루어지게 된다.
이처럼 이해당사국 사이에 역사적 충돌과 불편한 기억이 존재하는 유산에 대한 심의와 결정이 진행될 때, 위원국이 갖추어야 할 능력은 유산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역사인식을 기반으로 한 신뢰성이다. 이와 관련, 우리 정부는 202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해석설명센터를 설립하여 지원함으로써 갈등 유산의 해석과 설명에 관한 국제적 허브로서 주도권을 잡아 나갈 필요성이 있다. 앞으로 유산의 해석·설명에 관한 연구성과와 관련 전문가와의 협력을 기반으로 위원국으로서 국가 간 소모적 갈등을 조율하는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희망한다.
세계유산협약은 1972년 채택된 이래 50여 년을 지속해 온 국가 간 협약이다. 이 협약을 통해 전 세계 168개국에 산재한 유산 1,199곳이 세계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렸고, 45차례에 걸친 세계유산위원회를 통해 세계유산의 보존관리를 위한 치열한 논의가 거듭돼 왔다. 우리나라가 위원국으로 참여하게 됨을 다시 한번 축하하며, 문화재청을 비롯한 우리 정부가 세계유산협약이라는 선한 약속을 이끌어 가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