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가 물러나면서 그를 감싸던 초선 의원들이 조용해졌다. 내년 총선 공천과 윤심(尹心)을 의식해 김 전 대표에게 줄을 섰는데, 예상치 못한 쪽으로 상황이 돌변하면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셈이기 때문이다. '신핵관'이 주축인 이들은 이제 장제원 의원과 김 전 대표가 빠진 쇄신 리스트의 맨 앞에 이름을 올리는 처지로 바뀌었다.
이번 김 전 대표 사퇴 과정에서 초선들이 보인 모습은 3·8 전당대회를 앞두고 벌어진 연판장 사태를 연상케 했다. 지난 1월 국민의힘에서는 59명의 초선 중 48명이 '윤심'이 실린 김 전 대표를 지지하면서, 경쟁자였던 나경원 전 의원의 당대표 선거 불출마를 요구하는 연판장을 돌렸다. 당내 쇄신에 앞장서도 부족할 초선들이 권력에 줄을 섰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들은 불과 11개월 만에 구태를 반복했다. 지난 11일 서병수 하태경 의원이 김 전 대표 사퇴를 압박하자, 강민국 전봉민 최춘식 태영호 의원 등이 "진짜 X맨" "자살 특공대" 등의 표현으로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박성민 이용 의원 등 11명이 거들었다. 김 전 대표를 옹호한 15명 가운데 박대수 의원을 제외한 14명은 연판장 사태 때도 이름을 올린 의원들이다.
이들의 행태는 지난 2020년 총선 공천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많다. 당시 야당으로 인물난에 시달린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이 실력 있는 인사들을 적재적소에 투입해 경쟁력을 끌어올리지 못한 게 지금의 상황을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이번 김 전 대표 사퇴 과정에서 대화방에 거친 글을 남기거나 엄호한 초선 15명 중 11명은 '공천이 곧 당선'으로 이어지는 대구·경북(TK)과 부산·울산·경남(PK), 서울 강남을 지역구로 두고 있어 절박함이 없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날 "김 전 대표를 확실하게 세워놓고 공천을 받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라며 "결국 김 전 대표가 물러났으니 '낙동강 오리알'이 된 셈 아니겠냐"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계열 정당에서는 16대 국회 때 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전 의원이 주도한 '미래연대'가, 18대 국회 때는 권영진 정태근 김영우 전 의원 등이 주도한 '민본21'이 당 주류를 향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면서 쇄신과 개혁을 주장하는 '정풍운동'에 앞장서 왔고, 당의 정책에도 영향을 미쳐 왔다. 당 일부 중진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20년 전 남원정 얘기를 꺼내야 하는 현실이 참 갑갑하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권력만 좇다가 방향을 잃은 초선들에게 총선에서 어떤 역할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며 "이들이 쇄신 대상이 된 건 자업자득"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