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최태원도 줄 서는 ASML…'슈퍼 을' 마음 잡아야 반도체 1위 오른다

입력
2023.12.12 16:00
5면
윤 대통령 방문으로 ASML과 협력 강화 기대
ASML 독점하는 EUV 장비 확보 전쟁
TSMC 추격 위해선 더 많은 EUV 장비 필요


삼성전자, TSMC, SK하이닉스, 인텔 등 반도체 거물들이 줄을 서서 생산만 기다리는 기업이 있다. 네덜란드의 반도체 부품회사 ASML이다. 초미세 반도체 공정을 위해 꼭 필요로 하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독점하는 회사로 부품사이면서 고객사를 쥐락펴락하는 모습을 두고 '슈퍼 을'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네덜란드 방문으로 양국 간 반도체 협력이 주목을 받으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ASML 사이 관계도 끈끈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한 대에 수천억 원 장비, 없어서 못 판다


12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ASML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EUV 장비를 생산하고 있다. EUV 장비는 반도체 공정 중 반도체 원판(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작업에 활용된다. 빛을 이용해 한정된 원판에 회로를 새기는 데 얇으면 얇을수록 저전력·고성능 특성을 보이고 웨이퍼 한 장에 만들 수 있는 칩의 수가 증가해 효율적이다. 특히 EUV 장비의 경우 기존 장비(193nm) 대비 열네 배 정도 얇은 회로를 그릴 수 있다.

이 장비는 대당 2,500억~3,000억 원에 달할 정도로 비싸지만 주요 기업들이 주문하고 1년 이상 기다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2나노 공정 경쟁을 벌이는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분야부터 최근에는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도 EUV 장비를 도입해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문제는 ASML이 매년 생산하는 EUV 장비 대수가 40~50대 수준. EUV 장비를 많이 도입할수록 초미세 제품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만큼 이재용 회장까지 여러 차례 ASML 본사를 찾는 등 물량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아예 삼성전자와 TSMC 모두 ASML의 지분을 사들이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약 40대의 EUV 장비를 보유하고 있는 반면 대만의 TSMC는 100대 이상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쟁사보다 더 많은 ASML 장비 필요…협력 강화 기대"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ASML과 반도체 협력을 강화할 경우 무엇보다 안정적으로 EUV 장비를 확보하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파운드리 분야에서 점유율을 높이는 동시에 고성능 D램 등 고부가 가치 반도체 개발에 속도를 낼 계기를 마련하게 된 셈이다.

특히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업계의 압도적 1위인 TSMC를 추격하기 위해서라도 ASML의 차세대 EUV 장비인 '하이 뉴메리컬어퍼처(하이NA)'를 더 많이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2나노 미만의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한 필수 장비로 기존 EUV 대비 두 배가량 비싼 5,000억 원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3분기 TSMC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57.9%,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12.4%다. 삼성전자를 꺾고 2위 파운드리 기업으로 올라서겠다는 미국의 인텔 역시 지난해 말 이미 여섯 대를 확보했다. SK하이닉스 역시 고대역폭 메모리(HBM), 300단대 낸드플래시 등 차세대 고부가가치 메모리 반도체 개발을 위해 하이NA 장비를 주문한 상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차세대 장비의 경우 지금 주문해도 2년 후에 받을 정도로 밀려 있는 상태"라며 "정부끼리 협력이 강화될 경우 기업 입장에서 경쟁사 대비 좋은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