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이 어린 자녀를 돌보려 새벽 근무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채용하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고 대법원이 최근 판결했다. 해고 당사자를 법률 대리한 박삼성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기업들이 육아기 부모들을 배려하는 분위기가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삼성 변호사는 1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대법원이 (육아기 부모 배려에 대해) 일정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무조건 근로자의 권리가 우선된다는 게 아니라 인력 현황 등을 고려해 근로자에게 그 근무를 시킬 필요가 있는지, 배려할 수 있는지 등을 종합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사건 당사자는 1세와 6세 자녀를 키우며 한 고속도로 관리 용역업체에서 8년 9개월 동안 일했던 워킹맘 A씨다. 사측은 그의 출산과 양육을 배려해 매달 3~5차례 정도인 '초번 근무'(오전 6시~ 오후 3시)를 면제해줬고, 모든 근로자들이 공휴일에 연차 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2017년 4월 용역업체가 바뀌고 수습기간 3개월이 생기며 문제가 불거졌다. 새 회사는 A씨에게 새벽·공휴일 근무를 지시했다. A씨가 항의했지만 근무를 강요했고, A씨는 새벽·공휴일 근무를 거부하고 무단 결근했다. 이에 사측은 A씨의 수습기간 근태가 기준 점수 미달이라며 본채용을 하지 않았다.
A씨는 전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지만 "휴무일 설명을 듣고도 무단결근을 계속했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중앙노동위원회는 "회사가 일·가정 양립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며 부당 해고라고 판단했다. 이에 사측은 2018년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A씨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은 사측 승소로 판단했다. 2019년부터 4년 가까이 이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난달 16일 채용 거부는 부당하다며 이 사건을 다시 판결하도록 하급심 법원에 돌려보냈다. A씨가 채용을 거부당한 지 6년 6개월 만이다.
이번 판결은 사업주에게 소속 근로자에 대한 '일‧가정 양립 지원을 위한 배려의무'가 인정된다고 판단한 최초의 판결이다. 대법원은 “회사가 공휴일 근무의 횟수·빈도나 근무 시간을 조절해 연차휴가·외출 등을 사용하도록 하는 방법을 모색하거나 A씨가 바뀐 근로 조건에 대응할 수 있도록 일정한 유예기간을 부여했더라도 영업소 운영에 큰 지장이 있었으리라고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영업소에는 교대제 혼합 형태로 일하는 근무자가 7명 더 있어 A씨가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유일한 직원이 아니었던 점도 근거가 됐다.
대법원은 또 “영업소의 여건·인력 현황 등을 고려해 보면 일·가정의 양립 노력이 과도하거나 무리라고 보이지 않는다”며 “수년간 지속해 온 근무형태를 갑작스럽게 바꿔 보육시설이 운영되지 않는 공휴일에 매번 출근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자녀 양육에 큰 저해가 된다”고 판시했다. 남녀고용평등법(19조의 5)은 사업주가 육아기 근로자의 육아를 지원하기 위해 근로 시간을 조정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박삼성 변호사는 "(육아기 부모 배려) 사회적 공감대가 조금씩 확대되고 있는데 아직도 비정규직이, 고용이 승계되는 계약직은 이런 것들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며 "대법원이 이런 데 제동을 걸었고, 사업자들이 이런 배려를 할 수 있는 여건이 확대되는 것이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A씨에 대해 "소송이 길어졌기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았다"며 "소송이 마무리되면 회사와 복직 기간을 협의하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