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전 8시 56분 경남 사천시 중앙로에 위치한 청아여성의원 분만실. 우렁찬 아기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자 의료진의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천읍에 거주하고 있는 20대 부부의 셋째인 여아(3.16kg)가 제왕절개수술로 태어난 것. 사천에서 아기 출산은 무려 12년 만의 '사건'이다. 엄마 장씨와 아기 모두 건강한 상태다. 수많은 산모와 신생아를 봤던 김종춘(61) 원장도 손에 땀이 흐를 정도로 긴장했다. 김 원장은 "30년 이상 분만을 했지만 분만실 운영 재개 후 첫 출산이다 보니 더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임했다”며 "앞으로 산모들이 믿고 병원을 찾을 수 있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사천의 우주항공기술 관련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아버지 김모씨는 12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사천에는 분만 산부인과가 없어 첫째(4)와 둘째(3) 모두 차로 한 시간 걸리는 진주까지 오가며 진료를 받아야 했다”며 “첫째 둘째 모두 아들인데 셋째가 귀한 딸인 데다가, 집 가까운 곳에서 분만할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사천에 분만 산부인과가 생긴 건 12년 만이다. 사천의 산부인과 병원 3곳 중 한 곳으로, 유일하게 분만실을 운영했던 청아여성의원이 출산율 감소 등으로 2011년 분만실을 폐쇄하면서 아기 울음소리가 끊겼다. 인구 11만 명인 사천에서는 해마다 400~500명의 신생아가 태어나고 있지만 경남도 내 8개 시 단위 지자체 가운데 유일하게 분만 산부인과가 없었다. 때문에 이곳의 임산부들은 진주 등 인근 도시에서 진료를 보거나 ‘강제 원정 출산’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2018년 4월에는 진통을 호소해 병원으로 이송 중이던 30대 산모가 119구급차 안에서 아기를 출산하는 아찔한 일도 있었다.
사천 청아여성의원이 분만실을 다시 열 수 있었던 건 경남도가 올해 이 병원을 의료취약지 거점의료기관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경남도의 예산 지원(시설비·장비 구매비 4억 원, 3개월 운영비 1억5,000만 원)으로 지난달 분만실이 문을 열었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당초 분만실은 상반기부터 운영할 예정이었으나 필수 인력인 산부인과 전문의를 구하는 데만 6개월 이상 소요됐다. 청아여성의원 관계자는 “24시간 운영하는 분만실은 최소 산부인과 전문의 2명이 필요한데 대부분 지방 근무를 꺼린다”며 “10개월씩 산모와 교감해야 하는 특성상 장기간 근무할 수 있는 지역 연고자 등을 찾다보니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종춘 원장이 백방으로 수소문을 했지만 의사를 구하기 어려웠고 인근 도시에서 근무하는 후배(51) 의사를 삼고초려해 데리고 왔다. 지자체 예산으로 지급할 수 있는 의사 인건비는 월 1,700만 원 수준. 연 2억 원대 초반으로 상대적으로 분만의를 구하기 쉬운 수도권에서도 이 정도 보수로 의사를 구하기 어렵다. 청아여성의원 관계자는 "돈보다는 사명감 때문에 사천으로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사천시는 12년 만에 분만실 운영을 재개하면서 안정적인 출산환경이 구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남도와 사천시는 내년부터 매년 6억 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우주항공청 설립을 앞두고 정주 여건을 개선해 젊은 부부들을 사천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계획의 일환이다. 박동식 사천시장은 “저출산, 낮은 의료수가, 분만에 따른 사고 위험 등으로 갈수록 분만 산부인과는 줄어들고 있어 민간에만 의지해서는 분만실을 유지하기 어렵다”며 “우주항공수도 사천에 걸맞은 정주여건 개선을 위해 필수 의료시설인 안정적인 분만 환경과 인프라 구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