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2008년부터 순환도로의 통행료 수납 등을 24시간 관리하는 용역업체에서 근무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 '일근제 노동자'였지만, 자녀가 생긴 후 양육을 이유로 매달 3~5차례 돌아오는 초번 근무(오전 6시~오후 3시)를 면제받을 수 있었다. 사측은 공휴일을 인정하는 데 인색했지만, 일근제 노동자가 휴일에 연차휴가를 활용해 쉴 수 있게 해줘 육아에 큰 불편은 없었다.
그러나 2017년 4월 업체가 바뀌면서 상황은 크게 변했다. 고용승계를 약속했던 업체는 A씨와 3개월짜리 수습계약을 맺고 면제받았던 초번 근무는 물론, 공휴일 근무까지 지시했다. 1세, 6세 두 자녀를 돌봐야 하는 '워킹맘'이 따르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회사는 초번 근무를 할 때 자녀 어린이집 등원 시간에 외출을 허용했지만, 공휴일 근무는 예외를 두지 않았다. A씨가 근로자의 날과 석가탄신일에 무단 결근하자 사측은 초번 근무 외출도 없던 일로 했다.
결국 3개월 수습기간 A씨는 공휴일에 5차례 무단결근했고, 초번 근무를 9번 빼먹었다. 회사는 근무 태만을 이유로 그를 채용하지 않기로 했다. 중앙노동위원회가 직원의 무단결근 사유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해 용역업체의 채용 거부를 '부당해고'로 결론내리자, 사측은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자녀 양육권'의 가치를 높게 샀다. 재판부는 "A씨는 '노동자로서 근무'와 '자녀 양육'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제되는 상황에 처해졌다"며 "사측은 A씨가 무단결근 또는 초번 근무지시 거부에 이른 사정을 헤아려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A씨가 양육 때문에 공휴일 근무 등이 불가능하다는 사정 등을 설명한 자료가 없고, 업무 특성상 직원들이 일정 부분 초번·공휴일 근무를 분담하는 게 불가피하다"면서 해고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대법원의 결론은 부당해고였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이 사건은 신규채용이 아니라 고용승계 사안이라 채용 거부 통보의 합리성을 다소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측이 일과 가정 양립을 위한 배려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난달 16일 용역업체가 중노위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특히 양육 어려움을 알고도 사측이 A씨에게 초번·공휴일 근무를 지시한 점이 문제였다. 대법원은 "사측은 수년간 지속해온 근무형태를 갑작스럽게 바꾸기 어렵다는 A씨 요청을 거절하면서 공휴일에 연차휴가를 사용할 여지를 차단했다"고 지적했다. 근무태만 평가를 받기까지 사측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이다. 또 회사가 A씨에게 공휴일 근무를 지시해야 할 경영상 필요성이 적다는 이유를 들며 "보육시설이 운영되지 않는 공휴일에 매번 출근을 요구하는 건 자녀 양육에 큰 저해"라고 꼬집었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업주에게 소속 노동자의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기 위한 배려의무가 인정된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밝힌 첫 판결"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