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수명을 늘리는 데 유용한 한마디가 있다. "예스." 정당하거나 부당하거나, 맞거나 틀리거나 "예스"를 남발하는 '예스 맨'이 되면 매우 높은 확률로 승승장구할 수 있다. 실력이 모자라고 자리가 위태롭다면 "예스"라고 말하는 목청을 키우고 빈도를 높이면 된다.
'예스 만능시대'에 염증이 나던 터에 앤서니 파우치 전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의 최근 영국 BBC방송 인터뷰를 보고 막힌 혈이 뚫리는 것만 같았다. 지난해 은퇴할 때까지 39년간 보건ㆍ의료 분야 공직자로 대통령 7명을 보좌한 그는 "예스"를 못해서 고초를 겪었다.
정권 연장이 걸린 2020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경기 위축을 걱정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별것 아니라고 거짓말했다. 파우치는 성실하게 재를 뿌렸다. "코로나는 이미 끝났다." "아니다." "백신은 필요 없다." "아니다." "정부가 초기 대응을 잘했다." "아니다." 백악관 대면 보고를 금지당하고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살해 협박을 받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파우치는 함부로 자를 수 없는 존재였다. 미국 최고의 감염병 전문가라는 상징성, 고위공직자의 업무 연속성을 보장하는 법제도, 1940년생인 그를 '살아 있는 가장 섹시한 남성'(피플지ㆍ2020년)으로 밀어 올린 대중적 인기가 그를 엄호했다. 거침없었던 그의 행보는 그러나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에게 발탁됐을 때 파우치는 멘토로부터 일생의 조언을 들었다. "백악관에 들어갈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해야 한다. 대통령이 듣기 싫어하는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조언에 충실했다. 정치가 아닌 과학을, 자리가 아닌 공리를 섬겼다. 대통령 7명 모두에게 같은 원칙을 지켰다. 그게 파우치의 직업윤리였다.
부패한 직업윤리는 사람들을 죽이고 역사를 퇴행시킨다. '서울의 봄'은 바로 그것에 대한 영화다. 일군의 썩은 군인들이 나라를 통째로 삼키는 동안 또 다른 군인들은 황정민(극중 전두광)이 약속한 떡고물을 흘깃거리며 타협했다. "내 눈앞에서 내 조국이 반란군한테 무너지고 있는데 끝까지 항전하는 군인 하나 없다는 게 그게 군대냐?" 정우성(극중 이태신)의 대사는 직업윤리의 집단 타락에 대한 개탄이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이 윤석열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검사의 직업윤리를 뼈에 새겼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감동한 사람들이 그에게 나라를 맡겼다. 요즘 대통령실 주변에선 다른 버전의 말이 들려온다. "오직 한 사람, 대통령에게만 충성한다"는 참모들에게 윤 대통령이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완벽하지 않기에 때로 오판한다. 그러므로 대통령 참모의 직업윤리는 직언이다.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는 공직자 보편의 직업윤리 달성을 위해 바른말을 고집스럽게 해야 한다. 왕을 끌어내리고 대통령을 세운 건 입바른 소리를 하는 참모를 참수해도 되는 시절의 폐해가 커서였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일들이 반복되는 것을 지켜보며 현실의 이태신들이 따져 묻는다. "나라가 수상하고 정권이 아슬아슬한데 '예스'만 외치는 게 그게 참모냐? 그게 공직자냐?" "예스"가 아닌 말을 기꺼이 듣는 것이 윤 대통령의 직업윤리인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