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항공산업 전반을 이끌 우주항공청 개청을 두고 국회 논의가 8개월째 공전하면서 업계와 학계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선진국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 여야 간 정쟁으로 조직 신설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내수 시장마저 외국에 내주는 것 아니냐는 암울한 전망마저 나온다.
7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우주항공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우주항공청 특별법)'을 둘러싼 여야 입장차가 올 4월 법률안 제출 이후 계속되고 있다. 우주항공청의 위상, 위치, 규모, 연구개발(R&D) 기능 등 의견이 좀처럼 모이지 않다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다행히 합의에 이르는 듯했지만, 이달 5일 수정안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안소위로 회부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갈등을 빚었다. 수정안 부칙에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천문우주연구원을 우주항공청의 소관 연구기관이 되도록 추진한다고 적혀있는데, 야당은 '추진'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법안소위에 회부된 수정안은 상정 문턱도 넘지 못했다.
차일피일 밀리는 일정에 산업계는 속이 타 들어간다. 세계적인 '뉴 스페이스'(민간 주도 우주개발) 흐름 속에서 성장할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걱정에서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세계 우주 산업이 2020년 3,850억 달러에서 2040년 1조1,000억 달러 규모까지 성장할 거라 내다봤다. 항공기와 발사체 부품을 만드는 미래항공의 김태형 대표는 "우주항공은 앞으로 국력을 상징할 분야인데, 중소기업 힘만으로는 산업을 키우기가 불가능하다"며 "정부가 컨트롤타워를 세우고 이끌어나가는 게 절실하다"고 법 통과를 호소했다. 미국의 스페이스X도 항공우주국(NASA)으로부터 10년간 지원받은 덕에 뉴 스페이스를 선도하는 기업이 됐다.
학계도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학회, 한국추진공학회 등 4개 학회는 최근 공동성명서를 내고 "우주항공청 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국제 우주력 강화 환경에 대응하기 어렵다. 여야는 설립 지연으로 한국이 입는 타격을 인지하고, 국익을 우선해 조속히 특별법을 의결해야 한다"며 "우주항공청 설립으로 연구개발 시너지 효과 창출, 민간 산업 생태계 조성, 항공우주 인력 양성에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우주항공청 설립이 공전하는 사이 인력 공급에는 이미 빨간불이 켜졌다. 국내 우주 분야 석·박사 졸업생이 이 분야에 취업하는 비율이 2015년 25%에서 2019년 12%로 되레 감소한 것이다. 신규 인재 유입이 원활하지 않으면 산업 성장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상철 한국항공우주학회장은 "우주항공청을 만들 필요성에 대해 이미 여야 할 것 없이 공감했는데, 늦출 이유가 없다"면서 "우주에서 여러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범국가적 역량을 쏟아부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