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개발 정도가 높고, 성별 격차가 크며, 젠더 편견이 강한 나라:한국

입력
2023.12.09 04:30
24면
<145>국제 지수로 본 한국의 성차별



성불평등지수로 보면, 한국은 성평등국가임.
그러나 성격차지수로 보면, 한국은 성불평등국가임.
또한 젠더규범지수로 보면, 한국은 젠더 편견이 심한 국가임.
이상직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국제 지수로 본 한국 젠더 관계의 성격'

지난달 13일, 국회미래연구원이 발표한 ‘국제 지수로 본 한국 젠더 관계의 성격’(이상직 부연구위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실린 내용이다. 그래서 한국은 성평등국가라는 걸까, 성불평등국가라는 걸까? 소위 ‘젠더 갈등’이니 ‘페미 논란’이 연일 언론 지면을 장식하는 요즈음, 긴요하고도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이 보고서에 주목하는 주요 언론 기사를 찾을 수 없어 이 지면에서 한마디 거들고자 한다.

이 보고서는 한국이 여전히 심한 성불평등국가라고 주장하는 이들과 이미 평등을 달성한 나라라고 주장하는 이들 모두가 기대는 국제 지수들을 연결해 읽는다. 이를 통해 쉽사리 답하기 어려운 한국의 성평등 달성 정도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성불평등지수로 보면 한국은 성평등국가임”

먼저 한국이 상당한 정도의 성평등을 달성했다는 증거로 인용되는 ‘성불평등지수’(Gender inequality Index, GII)부터 보도록 하자. 이 지수는 흔히 UNDP로 알려진 ‘유엔개발계획(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에서 유엔회원국가들의 성불평등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개발한 것이다. 유엔개발계획은 1990년부터 매년 '인간개발보고서(Human Development Report)'를 발간해왔는데 2010년 처음 GII를 제시했다. GII는 건강, 역량, 노동의 세 항목으로 구성된다.

현재 2021년도 결과가 발표된 이 지수에서 한국은 191개국 중 15위를 차지했다. 이만하면 성평등국가라고 볼 수 있을까?

문제는 이 지수의 항목과 지표가 성평등을 ‘여성 인적 자원의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정의한다는 것이다. 교육, 정치, 노동에서 여성에 대한 실제 위치와 처우보다는 드러난 참여 수치로만 순위가 결정되는 이유다. 2006년 이미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남성의 그것을 앞지르고 2000년대를 풍미한 알파걸 담론과 함께 자기 계발에 최선을 다해 온 한국 여성들의 존재를 생각할 때 한국이 이 지수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여성들의 고등교육 기회 확대가 곧 성평등 정도가 높아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것이 곧바로 실제 자원과 권력의 증대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청소년의 성에 대한 금기와 통제의 결과인 낮은 청소년 출산율이 지수를 높이는 데 결정적이라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한다.

“성격차지수로 보면 한국은 불평등국가임”

다음은 한국의 성평등이 아직 멀었다는 증거로 인용되는 ‘성격차지수’(Gender Gap Index. GGI) 차례다. 이 지수를 개발한 곳은 흔히 ’다보스 포럼‘으로 알려진 ’세계 경제 포럼(World Economic Forum)’이다. 유엔비정부자문기구이기도 한 이 단체는 2006년부터 매년 발간하는 '성격차보고서(Gender Gap Report)'에서 경제, 교육, 건강, 정치적 역량의 4개 항목으로 구성된 GGI를 발표한다. 이제까지 한 번도 100위 내에 진입해 본 적이 없는 한국은 2023년 146개국 중 105위를 차지했다.

이 지수는 성평등을 ‘남녀 간 권력과 자원 배분에서의 공평함’으로 정의한다. GII와 비교해 보면 특히 경제와 정치 영역에서 남성 대비 여성에 대한 실제 처우를 지표화했다고 볼 수 있다. 고등교육을 받는 여성 비율의 증가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과 정치적 대표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부동의 1위를 26년째 자랑(?)하고 있는 성별 임금 격차, 여성들의 낮은 관리, 전문, 기술직 비율이 도드라진다. 한 국가 내 남녀 격차에 주목하는 이 지수에서 한국의 낮은 순위는 비슷한 경제 규모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볼 때 특징적이다.

흥미롭게도 국회미래연구원 보고서는 이 두 지수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치가 다르다는 점을 질문한다. 보고서는 두 지수가 성평등의 다른 측면에 주목하기는 하지만 다른 국가들에서는 기본적으로 조응하는 데 반해 한국은 유난히 큰 차이를 보인다는 데 주목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젠더규범지수로 보면 한국은 젠더 편견이 심한 국가임”

이에 대한 보고서의 해석은 ‘젠더규범지수’(Gender Social Norms Index, GSNI)를 함께 읽는 것이다. 이 지수는 앞서 본 ‘성불평등지수’를 개발한 UNDP에서 2019년 처음 발표했으며 올해 두 번째로 조사, 발표한 것이다.

이 지수는 성평등을 인식과 편견의 차원으로 정의한다. 앞선 두 지수가 성평등을 모두 결과적인 수치로 본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올해 이 지수를 발표한 UNDP의 보고서는 전 세계적으로 관찰되는 교육 분야의 성별 격차 감소가 여성의 수입 증대로 연결되지 않는 주요 원인으로 젠더 편견을 지목한다. 남성의 경우 교육 기회 증대가 수입 증대와 권력 증가로 이어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인적자원으로서의 여성 개발은 앞서 있지만 경제와 정치 영역에서의 남녀 격차가 큰 한국의 상황에도 들어맞는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은 4개 항목 모두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이 없는 이들의 비율은 10.1%에 불과했다. 주요 선진국들은 대체로 60%에서 70%를 상회하며 가장 편견이 강한 일본과 이탈리아도 40% 정도라는 사실과 비교해 볼 때 놀랍고도 씁쓸한 수치다.

이 지수는 38개국을 대상으로 2010년에서 2014년까지, 2017년에서 2022년까지 젠더 편견이 없는 이들의 비율을 비교했는데 이에 따르면 한국은 젠더 편견이 없는 이들의 숫자가 줄어든 11개국 중 하나다. 뿐만 아니라 이 후퇴가 칠레 다음으로 큰 나라이기도 하다.

세 개의 지수를 연결해 보면, 한국은 다른 국가와 비교해 볼 때 인력 자원으로서의 여성 개발의 정도가 높으며, 남녀 간 격차가 크고, 젠더 편견이 강한 사회다.

무엇을 할 것인가

한국 여성들은 1987년 민주화 이후 1988년 제정된 ‘남녀고용평등법’(현재 ‘남녀고용평등과 일 ·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으로 비로소 한 명의 일하는 노동자이자 시민으로서의 위치를 갖게 되었다. 사적 관계에서도 남성과 평등한 위치를 점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2005년 호주제 폐지에 이르러서였다. 그사이 여성혐오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세력의 결집과 현실 정치 세력화라는 한국형 백래시가 등장했다.

호주제 폐지 10년 후, 2015년부터 다시금 불붙어 아직도 그 효과와 여파를 가늠할 수 없는 페미니즘 대중화는 한국형 백래시를 드러내고 다양한 개인 여성들의 위치, 요구, 욕구를 가시화해 왔다. 지금 경험하는 성별 격차와 젠더 편견 강화는 오래된 성불평등한 제도와 관습, 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와 변화가 일어나려는 이때, 이를 멈춰 세우려는 공격적 시도다.

무엇을 할 것인가? 국회미래연구원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제안으로 끝난다. “정치 영역(국회의원, 장관 등 고위직 참여 수준)과 경제 영역(경제활동, 소득, 고위직 참여 수준 등)에서 젠더 평등을 이루기 위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함.” 여기에, 남녀고용평등법 제정과 호주제 폐지의 역사가 이미 보여준 바를 덧붙인다. 젠더 평등을 위한 여러 정책적 조치는 뜻을 같이하는 시민들의 연대와 행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인 이한 작가와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가 번갈아 글을 씁니다.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