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김용(57)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판결문 곳곳에는 '이재명'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 사건 피고인은 아니지만, 법원이 인정한 사실관계를 보면 관련 사건 대부분이 그를 위해 이뤄졌거나 그의 지근거리에 있던 인물들에 의해서 수행됐다. 법원은 주요 사안에 대한 최종 결정권이 이 대표에게 있었다는 점을 시사하면서, 김 전 부원장에게 건네진 금품 역시 이 대표의 정치활동을 위해 쓰였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1일 한국일보가 서울중앙지법의 김 전 부원장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판결문을 확인했더니, A4 용지 147쪽 분량 판결문에 이 대표 이름이 120차례 등장한다. '김용'이라는 이름이 107회(피고인 표현은 제외) 나온 것과 비교해 보면 이 사건과 이 대표의 연관성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법원이 인정한 사실에 따르면, 대장동 민간업자들은 2014년 성남시장 선거에 출마한 이 대표를 돕기 위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우호적인 글을 쓰거나 잘 아는 기자에게 상대 후보에 대한 부정적 기사를 부탁했다. 선거 후 김 전 부원장 등이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술자리를 갖는 등 양측이 유착한 과정도 상세히 드러났다.
재판부는 우선, 김 전 부원장이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으로부터 수수한 금품 대부분이 이 대표를 위해 쓰였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유죄가 선고된 불법 정치자금 6억 원에 대해선 "(이 대표의) 경선 준비 등 공적 정치활동을 위한 비용으로 일정액이 소비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20대 대선과 관련한 공식 예비경선 후보자 등록일인 2021년 6월 이전부터 서울 여의도 주변 2곳을 대선 경선준비를 위한 사무실로 이용했다"며 "김 전 부원장은 사무실 임차와 사용 등 비용을 정확히 모른다고 진술하지만, 사무실이 아무 대가 없이 제공됐다고 볼 정황은 없다"고 강조했다.
무죄 판단을 내린 뇌물 1억 원에 대해서도 '뇌물이 아니라 이 대표의 성남시장 재선 선거를 위한 정치자금'이라고 규정했다. 결국 유죄가 선고된 정치자금 6억 원에 더해 뇌물 1억 원까지 모두 이 대표를 위한 정치자금으로 본 것이다.
범행 배경인 대장동 사업의 최종 결정권자가 이 대표라는 점도 시사했다. 재판부는 "(김 전 부원장은) 시의원으로서의 직무를 담당하면서 일단은 대가성이 존재하는 금품을 받긴 했다"면서도 "각종 개발사업의 인허가와 관련된 직접적 업무는 성남도시개발공사와 성남시에서 결정해 추진한 것이어서 그 인허가 과정에 직접 권한을 가지고 개입하거나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대장동 사업 관련 최종 결정권자는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 대표라는 검찰 주장을 수긍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대장동 의혹 수사 및 재판의 결과를 가를 핵심 변수로 평가되는 '정영학 녹취록'의 신빙성도 일부 인정됐다. 이 녹취록은 대장동 핵심 인물인 정영학 회계사가 김만배, 남욱, 유동규 등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재판부는 "김만배씨는 자신이 (녹취록에서) 했던 다수의 발언이 허언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영학 회계사의 녹음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한 발언이고 △장기간에 걸쳐 같은 취지와 맥락 아래 발언이 반복됐다"며 "다소의 과장이나 거짓이 섞여 있을지언정, 단순히 허언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어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번 1심 선고 결과가 다른 대장동 의혹 관련 재판 및 검찰 수사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