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전미번역상' 받은 김이듬 시인의 시간은 화려했을까

입력
2023.12.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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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시집 '투명한 것과 없는 것' 출간
6년간 운영한 책방 폐업 등으로 힘든 기간
"비가시적이라도,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
일상에 더 밀착한, 현실에 발 딛고 있는 시
해외문학상 수상 후 "한국 시 홍보에 사명감"

김이듬(54) 시인은 2020년 시집 '히스테리아' 영어 번역본으로 미국 문학번역가협회가 주관하는 '전미번역상'과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동시에 받았다. 한국 문학인 중에는 처음이었다. 이후 그는 화려한 시절을 보냈을까. 실상은 한없이 하강했다. 아버지를 여의었고 투병 중이던 친구마저 떠나보냈다. 운영하던 책방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정이 더 어려워져 폐업했다. 모아 둔 돈 한 푼 없는데 건강도 악화했다. 그렇게 "인생에 가장 힘든 시간을 통과하면서 썼던 시들"을 모은 시집이 지난달 나온 '투명한 것과 없는 것'이다. 2001년 등단한 그의 여덟 번째 시집이다.

김 시인을 전화로 만났다. 지난 10월부터 전남 담양의 문학인을 위한 창착 공간(레지던시) '글을낳는집'에 거주 중이다. 그는 새 시집에 대해 "평범한, 일하는 인간의 시간"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2017년부터 약 6년간 경기 일산에서 독립서점 '책방이듬'을 운영하며 보낸 시간을 빼놓을 수 없다. 팬데믹 기간 어떻게든 버틴 하루하루가 모두 영감이 됐다. 시집에서는 일상에 한 걸음 더 밀착해 타인을 고집스럽게 응시하려 애쓴 시인의 시간을 읽을 수 있다.

시집 제목이 된 시구가 있는 시 '간절기'도 일터에서 비롯했다. "유리창을 유리창이 없는 것처럼 닦아놓으면 / 새가 부딪혀 죽는다 / 사람의 얼굴이 깨지기도 한다 // …… 모든 사물과 사람들이 가진 양면성에 관해 생각한다 /투명한 것과 없는 것을 혼동하지 않을 때까지 ……" 깨끗한 창에 부딪혀 죽은 새를 목격하고 썼다. 김 시인은 "사람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정말 그럴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부터 혐오, 사랑 같은 관념들까지. "보이지 않는 것들이 없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으로 시를 썼다. 시 쓰기를 통해 잃었다고 생각한 것들이 다시 존재하게 됐고, 상실로 고통스러웠던 시간은 오히려 풍요로웠던 시기로 기록됐다. 시가 위로가 된 순간이다.

책방 손님들의 이야기에서 피어난 시들도 있다. 시 '시린 소원'은 장애인 아들이 있는 단골손님의 "내 소원은 내 아들이 나보다 하루 앞서 죽는 게 내 소원"이라는 한마디에서 출발했다.

이번 시집에서 김 시인을 수식하던 '당돌하고 도전적' '에로티시즘적' '과감한' 같은 것들은 살짝 옆으로 밀려났다. 다만 항상 현실에서 출발하며 두 발로 현실을 딛고 가는 그의 시 원형은 그대로다. 그는 "그 현실이 조금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독사한 어느 할아버지의 슬픈 사연,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현실, 청년들이 일하다가 또는 놀러 갔다가 자꾸 죽는 부조리가 그의 현실을 가득 채웠다. "그 모든 현실에 대해 시라도 쓰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면서 그는 울먹였다. 그런 온기를 머금은 시어와 여전히 예리한 시선으로 '입국장' '다행은 계속된다' '신년 청춘음악회'와 같은 시들이 완성됐다.

2020년 수상 이후 소위 '꽃길'만 걷지 않았다는 것은 알겠다. 그래도 큰 상으로 도움 받은 게 있지 않을까. 그는 "한국 시를 해외에 소개하는 데 제 시가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해외 문학 행사에 초대받는 일이 잦아진 그는 출국할 때마다 한국 시인들의 시집을 여러 권 챙겨 간다. 내년 여름 슬로베니아 와인앤포에트리(와인과 시) 축제에 갈 때도 그렇게 할 작정이다. "해외에 한국 시를 소개하는 것을 자발적인 사명이자 기쁨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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