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서 미국 꺾은 일본 육상 스타 "신체 조건이 전부는 아냐"

입력
2023.11.28 13:00
24면
[K스포츠의 추락, J스포츠의 비상]
2016 리우 올림픽 은메달 이즈카 인터뷰 
"남자 110m 허들은 아시아 선수에 유리" 
세계 톱100 중 日 11명… 해외 훈련 영향 
세계주니어 남자 400m 계주 금메달까지
육상 등록 선수 42만명… 한국은 5800명
"은퇴 후 단거리 동호인 늘리는 데 기여"

편집자주

한국 스포츠, 어떻게 기억하나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도약한 우리 스포츠는 국민들에게 힘과 위로를 줬습니다. 하지만 저력의 K스포츠가 위기에 섰습니다. 프로 리그가 있는 종목조차 선수가 없어 존망을 걱정합니다. 반면, 라이벌 일본은 호성적을 거두며 멀찍이 달아났습니다. 희비가 엇갈린 양국 스포츠 현실을 취재해 재도약의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한국 등 아시아 선수들에게 육상 단거리 종목은 '통곡의 벽'이었다. 국제 대회 메달권 진입에 도전해 왔지만 미국과 유럽 선수 등에 밀려 시상대에 설 기회가 흔치 않았다. 그런데 2016년 8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벽에 균열이 일어났다. 4명의 주자가 100m씩 이어 달리는 남자 400m 계주에서 일본이 미국을 제치고, 자메이카에 이어 2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당시 맏형이었던 이즈카 쇼타(32·미즈노)는 지난달 11일 일본 도쿄에서 가진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단거리 종목이 (신체가 상대적으로 작은) 아시아 선수들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한국도 얼마든지 세계 무대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남자 110m 허들 세계 랭커 100명 중 일본인 11명

이즈카가 아시아 선수들의 선전을 자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꾸준한 성과와 과학적 분석 결과가 가능성을 말해준다. 그는 "남자 110m 허들은 보통 3보를 뛰고 장애물을 넘는데 일본처럼 키가 너무 크지 않은 선수들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올 시즌 남자 110m 허들 기록을 보면 세계 상위 랭커 100명 중 일본 선수가 11명으로 미국(26명), 자메이카(12명)에 이어 3번째로 많다. 중국도 5명으로 프랑스(9명)에 이어 5위다. 일본은 100m에서도 9초대에 진입한 선수가 계속 늘고 있고, 계주에서도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지난해 세계주니어육상선수권대회(20세 미만)에서는 남자 400m 계주 우승을 차지하며 미래를 밝혔다.

이즈카는 일본 육상이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는 비결 중 하나로 해외 훈련을 꼽았다. 많은 선수가 미국이나 유럽 국가 등 톱랭커들이 즐비한 지역을 훈련 거점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단거리뿐 아니라 아시아 선수 최초로 여자 창던지기 세계선수권대회(2023년)에서 우승한 기타구치 하루카(25)도 창던지기 최강국인 체코에서 훈련한다. 이즈카는 "사실 육상 기술만 놓고 보자면 일본에서도 비슷하게 배울 수 있다"며 "하지만 최고 수준의 외국 선수들과 해외에서 함께 연습하는 것만으로도 기록을 단축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일본 내에서 1등만 하던 선수라도 해외에 나가 더 빠른 스프린터의 뒷모습을 직접 보게 되면 스스로 약점을 보완하려 애쓰게 된다는 설명이다.

두터운 저변도 일본 육상의 경쟁력을 끌어올린 요인으로 꼽힌다. 일본 내 육상 등록 선수는 42만 명(2020년 기준)으로 배구(41만 명)와 비슷하다. 한국의 등록 선수는 5,800여 명뿐이다. 이즈카도 "일본 육상의 힘은 부카츠(部活·방과후 부활동)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부카츠는 우리의 학교 운동부보다 가입 문턱이 훨씬 낮다. 직업 선수를 꿈꾸는 아이뿐 아니라 공부로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육상을 즐기려는 아이들도 함께 섞여 운동한다. 어려서부터 쉽게 단거리를 배우고 도전할 수 있기에 재능 있는 아이들이 묻힐 가능성도 낮다. 입시 명문인 시즈오카현 후지에다메이세이 고교 출신인 이즈카는 "육상부원 중 40%는 선수가 되려는 마음보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달리기를 즐기는 친구들이었다"고 설명했다.

32세 베테랑 스프린터인 이즈카는 "은퇴 이후 단거리 육상 동호인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단거리 종목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지만 동호인이 1,000만 명에 달하는 마라톤에는 여전히 밀린다. 그는 "단거리 동호인들이 참여하는 마스터스 대회를 만들거나 일반인들이 쓸 수 있는 육상 트랙을 늘리고 싶다"고 말했다.

목차별로 읽어보세요

  1. ① 엉망이 된 코트, 벌어진 격차
    1. • 세상에서 가장 슬픈 데뷔··· 십자인대 끊어진 열일곱 은성, 농구 코트에 서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0614040002963)
    2. • 17세 아들 일본에 배구 유학 보낸 프로 코치··· “만화 하이큐는 실화”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1217340000195)
    3. • 한국엔 없는 풍경… '3540 대 1' 고교생 사쿠라코의 마지막 도전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0315570002005)
    4. • 학원 뺑뺑이 대신 팀플레이 4시간…'부카츠' 학생에겐 '중2병'이 없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0510430004665)
    5. • 김연경에 가려졌던 한국 배구 민낯 "10년 전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0910530003738)
  2. ② 외길 인생과 이도류 인생
    1. • 메이저리그 MVP와 도쿄대생 동시 배출한 일본 시골 학교의 비밀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0814480004370)
    2. • 졸업하고 프로 구단서 6년 버틴 야구 선수 7.8% 불과…'바늘구멍 인생'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1310340005798)
    3. • '0.1%' 신유빈 황선우 꿈꾸며 퇴로 없이 '올인'… 한국 스포츠의 비극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0816450000613)
    4. • 이자카야서 일하며 공 던지는 에이스 투수… 일본 야구의 힘은 '이도류'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0619450004180)
    5. • K스포츠 '퍼스트 펭귄' 청원경찰 국가대표 주재훈 "억지로 시켰으면 운동 안 했을 것"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03113280005380)
  3. ③ 입시 지옥에 잠겨 있는 체육관
    1. • 477억 들인 ‘호화 체육공원’… 조명탑 없어 '반쪽' 전락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1016360003171)
    2. • ‘영장류 최강’ 전설, 일본 동네 레슬링장에서 시작됐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1320470001844)
    3. • 제2의 손흥민·이강인도 '전국대회 8강' 못 들면 대학 못 간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1318080000260)
    4. • 아들이 고교 야구 한다면…"한국 월 200만원, 일본은 5만원"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1323080002174)
  4. ④ 일본 스포츠 '퀀텀점프' 비결
    1. • 노벨상 수상 이어지듯…일본 스포츠 도약 비결은 '백년대계'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1510440000297)
    2. • 장기 로드맵 없는 한국 스포츠 '우물 안 개구리'... 열악한 저변이 더 큰 문제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0714490005098)
    3. • "한국 도저히 이길 수 없다"던 일본… 선택과 과학으로 '퀀텀점프'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1516000001163)
    4. • 최윤 선수단장 “스포츠 엘리트는 키우는 게 아니라 발굴… 1인 1기 필요”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03116550001536)
  5. ⑤ 금메달 조바심 잠시 내려놔야
    1. • 국민 60% “메달보다 과정 중요”… 성적 지상주의와 결별해야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1519220005010)
    2. • 이병완 WKBL 총재 “한일전 농구 참패… 쇠락기 한국 스포츠 현주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1600550001482)
    3. • '붕괴 직전' K스포츠, "극약 처방 필요하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1609300002617)
    4. • "1m 앞에서 슛 날리고 강스파이크까지" 과학적 훈련법 설 자리 없어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1611170001794)
  6. ⑥ K스포츠 도약 위한 쓴소리와 약속
    1. • 오타니 스승의 가르침 "남 탓하는 생각 없애주는 게 가장 중요"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0908370005791)
    2. • 벼랑 끝 여자 농구··· '전국 최강' 초등학교도 선수 3명뿐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1014320004772)
    3. • 정운찬 "입시에선 실패 모른 서울대생, 일본 야구에 져보며 세상 넓은 것 배웠죠"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2009540001360)
    4. • ”사자와 눈싸움, 겨울에 바다수영… 그런 훈련 이제 끝내야”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2209320002386)
    5. • 올림픽 금메달 넘보는 일본 농구 "현실 인정하니 길이 보였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2216530005533)
    6. • 연봉은 한국, 성적은 일본… "우리 선수층 얇아 스타급에 돈다발"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2216030004391)
    7. • 4cm 더 크지만 일본에 참패…한국엔 왜 '돌격대장' 송태섭이 없을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2314040004958)
    8. • 인스타에 태극기 올린 일본 야구 국가대표…”김혜성∙노시환 인상적”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2522160004800)


도쿄= 유대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