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18~24개월 동안 장기간 약을 먹어야 했던 ‘다제 내성 결핵(MDR-TB)’ 환자가 6~9개월만 먹어도 되는 '단기 치료법'이 이 우선 권고된다.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이사장 정만표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지난 21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결핵 진료 지침 4판’ 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다제 내성 결핵은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에 감염된 결핵 치료에 가장 효과적인 항결핵제인 이소니아지드·라팜피신을 포함한 2개 이상 결핵 약에 내성이 생겨 이들 약으로 치료되지 않는 결핵을 말한다.
그동안 다제 내성 결핵의 치료 성공률이 64.7%에 불과(선진국의 경우 70~80%)한데다 치료에 쓰이는 2차 약제는 1차 약제보다 부작용이 많다. 치료 기간도 18~24개월로 매우 길어 비용 부담이 크고, 수술로 병변을 제거해야 할 때도 있다.
2018년 기준 전체 결핵 환자 2만6,433명 중 다제 내성 결핵 환자는 618명(2.3%)이지만 2019년 기준 국내 다제 내성 결핵 환자 발생률은 전 세계 4위에 달한다.
이번 '결핵 진료 지침 4판 개정안'은 2020년 세계보건기구(WHO) 결핵 진료 지침에서 바꾼 '약제 내성 결핵'의 분류와 정의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이에 따라 한 가지 이상 항결핵제에 내성을 가진 결핵균에 의해 발생한 결핵을 '약제 내성 결핵'으로 새로이 분류했다.
새로 분류한 약제 내성 결핵으로 △광범위 약제 내성 결핵(XDR-TB) △광범위 약제 내성 전 단계 결핵(pre-XDR-TB) △다제 내성 결핵(MDR-TB) △리팜핀 내성 결핵(RR-TB) 등 4가지다.
이전에는 퀴놀론계(quinolone) 약제와 주사제가 다제 내성 결핵 치료에 핵심 약제로 사용됐기에 이들 약제의 내성 여부를 기준으로 약제 내성 결핵을 분류했다.
그러나 더 이상 주사제가 다제 내성 결핵 치료의 핵심 약제로 사용되지 않고 베다퀼린·리네졸리드 같은 약제들이 새로운 핵심 약제로 분류되면서 약제 내성 결핵의 분류와 정의에도 변화가 필요했다.
이에 따라 약제 내성 결핵 치료도 새로워졌다. 다제 내성 결핵 치료가 단기 요법과 장기 요법으로 분류돼 소개됐으며, 치료에 사용되는 항결핵제 종류에 프레토마니드가 추가됐다.
과거 WHO 지침은 다제 내성 결핵 환자에 대해 A군 약제 3가지(퀴놀론, 베다퀼린, 리네졸리드)를 포함한 4~5개의 약제 조합으로 18~20개월 치료하는 장기 요법을 권고했다. 이에 국내 진료 지침도 이를 표준 치료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2020년 이후 항결핵 신약과 재창출 신약을 다양하게 조합한 여러 단기 요법에 대한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다제 내성 결핵 치료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2022년 WHO 지침은 이를 적극 반영해 다양한 단기 요법을 장기 요법에 우선해 사용하도록 권고했다. 이에 국내에서도 단기 요법을 우선 사용하도록 권고하는 방향으로 지침이 개정됐다.
지침 개정안에는 WHO처럼 퀴놀론 감수성 다제 내성 결핵 치료에 6개월 BPaLM(베다퀼린, 프레토마니드, 리네졸리드, 목시플록사신) 요법이, 퀴놀론 내성 다제 내성 결핵 치료에 6개월 BPaL(베다퀼린, 프레토마니드, 리네졸리드) 요법이 포함됐다.
이와 함께 퀴놀론 감수성 다제 내성 결핵의 치료에 국내 시행 연구를 바탕으로 한 9개월 MDR-END 요법(레보플록사신, 델라마니드, 리제놀리드, 피라진아미드)을 포함했다.
약제 내성 결핵 치료에 사용되는 약종류에도 BPaL, BPaLM 요법에 사용되는 프레토마니드가 새로 포함됐다.
이 밖에 다제 내성 결핵 치료 결정 시 퀴놀론 내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진단 검사 속도를 내도록 광범위 약제 내성 결핵 진단 키트 도입에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목정하 부산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다제 내성 결핵 치료 결정 시 퀴놀론 내성을 빨리 확인하는 게 필수적”이라며 “지금은 배양된 검체(샘플)로만 이용할 수 있어 빠르게 확인하기 어렵다”고 했다.
폐결핵은 결핵균이 폐 조직에 감염을 일으켜 발생한다. 결핵 환자의 상당수는 무력감, 피곤함을 호소하고 식욕이 떨어져 지속적으로 체중이 감소한다.
폐결핵의 가장 흔한 증상은 기침과 가래이므로 일반적인 호흡기 질환과 구별이 어렵다. 중증 이상의 결핵에서는 피가 섞인 가래가 나오거나 호흡곤란이 올 수 있다.
폐결핵을 예방하려면 흔히 ‘불 주사’라고 이야기하는 BCG 예방접종이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생후 1개월 이내 모든 신생아에게 BCG 예방접종을 권고하고 있다.
BCG 예방접종을 하게 되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폐결핵 발병이 20%까지 줄고 10년간 효과가 지속된다. 다만, BCG 예방접종을 한다고 해서 결핵에 전혀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고 결핵성 뇌막염이나 속립성 결핵과 같은 치명적인 결핵을 예방할 수 있다.
결핵 예방을 위해서는 예방접종도 필수적이지만 결핵 인식 개선이 중요하다. 결핵은 호흡기 전염병이므로 평소에도 기침 에티켓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예방에 도움이 된다.
기침 등의 호흡기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되면 결핵을 의심해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는 게 좋다. 결핵이 의심되면 결핵균 전파를 막기 위해 치료 시작 전이라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공공장소 이동을 삼가야 한다. 또, 결핵 환자의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은 접촉자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
김순종 건국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폐결핵을 막을 방법은 전염성 있는 결핵환자의 조기 발견 및 치료뿐”이라며 “결핵에 대한 인식 개선과 홍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결핵은 결핵균에 감염된다고 해서 반드시 발병하는 것은 아니므로 설령 감염된다고 해도 몸이 이겨낼 수 있도록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