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경찰관들 사이에서 '회장님'으로 불렸다. 그러나 흔히 회사에서 사장 위의 직책을 이르는 회장이 아니었다. 경찰대 출신 간부들이 주된 멤버인 골프 모임(성경회)의 회장이었다. 최근 광주·전남 지역 검찰과 경찰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 브로커' 성모(62)씨 얘기다.
그의 정체는 8월 4일 검찰에 구속되면서 알려졌다. 그는 가상화폐 투자 사기범으로부터 사건 무마 청탁 명목으로 18억여 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았다. 당시 경찰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브로커 구속쯤으로 비쳤다. 그런데 경찰 반응이 의외였다. 광주경찰청의 한 간부는 "큰일 났다"며 "경찰 고위층과의 친분을 과시한 성씨는 사건 무마 청탁과 경찰 간부급 인사 청탁에도 깊숙이 개입한 인물인데, 검찰이 가만히 있겠냐"고 우려했다.
아니나 다를까. 경찰 안팎에선 "현직 치안정감과 치안감, 전직 치안감, 총경, 경정 등 전·현직 경찰 간부 10여 명이 검찰 수사망에 걸렸다"는 뒷말이 돌았다. 성씨와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전 전남경찰청장(치안감)은 이달 15일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전남지역 다수의 자치단체장, 지역 정치인까지 성씨와 접촉한 인사로 거론되고 있다. 자고 나면 새 이름이 나온다는 평이 돌 정도다. 광주지검 반부패강력수사부는 23일 성씨의 경찰 인사 로비 의혹과 관련해 전남경찰청과 해남경찰서 등 7곳을 압수수색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에도 광주경찰청과 광주 북부경찰서 등을 압수수색했다. "도대체 성씨가 누구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성씨와 경찰관들 간 관계 맺기는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씨는 20대였던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유흥주점에서 밴드마스터로 활동하며 그곳을 찾은 경찰관들과 안면을 트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성씨가 일했던 유흥주점은 경찰 간부들이 단골처럼 드나들던 곳이었다. 밴드마스터를 그만둔 성씨는 2008년 전후로 경찰 고위 간부 가까이에서 자주 얼굴을 드러내 경찰에선 '의리남'으로 통했다. 한 경찰 간부는 "모 경찰 고위층 인사의 집사로 소문났던 성씨가 2010년 이 인사 사망 이후에도 유족들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에 경찰 간부들 사이에선 '성씨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신뢰를 쌓은 성씨는 평소 '형님, 동생' 하던 경찰 간부를 통해 다른 간부들을 소개받는 등 마당발 인맥을 쌓아왔다. 성씨는 인맥 관리를 위해 고향(전남 담양)은 물론 술·골프 접대를 활용했다.
성씨의 경찰 내 위세는 대단했다. 실제 경찰에서 "승진하려면 성씨에게 줄을 대야 한다"는 말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성씨는 경찰 인사 로비 대가로 뒷돈을 챙겼다. 또 다른 경찰 간부는 "성씨가 경찰 고위층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승진 대상자들에게 인사 청탁 활동비를 요구하고 이를 거부하면 험담을 하고 다녀 청탁자들이 돈을 안 챙겨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일각에서 뒤늦게 "성씨의 실상은 '지저분한 브로커'였다"는 한탄이 흘러나온 배경이다.
성씨는 경찰 인맥 등을 통해 자치단체에도 손을 뻗쳤다. 성씨는 대략 8년 전부터 관급 자재 납품 업체의 의뢰를 받아 자치단체를 상대로 수주 영업을 대리하면서 일정 수수료를 받는 브로커로 활동했다. 성씨는 목재 보행 덱(deck)뿐만 아니라 에어컨 납품 수주까지 손을 댔는데, 2020년부턴 자신의 아내와 아들 명의의 목재 판매 회사를 차려 납품을 수주하기도 했다. 성씨에게 영업을 의뢰했던 한 업자는 "수년 전 성씨가 전남 지역 한 자치단체에서 발주하는 관급 자재 납품 건을 많이 수주해 줄 테니 회장 명함을 파달라고 해서 그렇게 해줬다"며 "그런데 성씨가 해당 자치단체장과 크게 싸우는 바람에 투자비만 날린 뒤 성씨와 결별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