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1일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면서 군 당국은 공언한대로 2018년 맺은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 정지에 나설 방침이다. 이미 9·19 합의가 유명무실하고 우리 측에 불리하다고 정부가 지적해온 만큼 예고된 수순이다. 다만 정치적 부담이 큰 합의 파기가 아닌 전체 혹은 부분 효력 정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9·19 군사합의는 △비행금지구역 설정 △군사분계선(MDL) 인근 포 사격 및 훈련 금지 △남북 간 적대행위 중지를 규정했다. 아울러 우발적인 무력충돌을 방지하고자 육·해·공 완충구역을 설정했다. 일종의 안전판인 셈이다.
하지만 합의 이후 5년이 지나면서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2020년 11월 창린도 해안포 사격을 포함해 서해 완충수역을 향해 110회 넘게 포 사격을 하는 등 북한의 합의 위반은 3,400여 회에 달한다. ‘우리는 지키는데 북한은 지킬 마음이 없는 일방적 합의’라는 것이 군 당국의 불만이다.
특히 '비행금지구역'부터 손을 봐야 한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현재 MDL로부터 20㎞(서부)~40㎞(동부) 안에서는 전투기나 정찰기 등 고정익 항공기의 비행이 금지돼 있다. 무인기 역시 MDL 남쪽 10㎞(서부)~15㎞(동부)에서는 날아다닐 수 없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의 각종 전술적 도발 징후들을 식별하기 위한 감시정찰자산 운용에 많은 제한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행금지구역 효력이 정지될 경우 군은 당장 무인기를 MDL 5㎞ 이남까지 운용하는 게 가능해진다. 이를 통해 장사정포 등 북한이 숨겨둔 표적을 보다 밀착 감시하고 전·후방 도발 징후를 실시간으로 포착해 대응할 수 있다. 특히 탐지거리가 8㎞에 불과해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사단급 무인기의 경우, 정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데 9·19 합의는 족쇄나 다름없다.
MDL 인근 포 사격 및 훈련 금지 조항도 필요한 효력 정지 대상으로 꼽힌다. 현재는 MDL 5km 안에서 포병 사격훈련과 연대급 이상 야외 기동훈련이 금지돼 있다. 동·서해 해상 완충구역에서도 포 사격을 할 수 없다. 매년 4차례였던 서북도서의 K-9 자주포 실사격 훈련도 9·19 합의 이후 연 2회로 줄어든 상태다. 이로 인해 우리 군은 "백령도·연평도 등 서해완충구역에 배치한 주요 화기로 사격 훈련을 하려면 육지로 500㎞ 넘게 옮겨야 하는 '인내를 강요받고 있다"며 볼멘소리가 상당하다.
정부의 효력 정지 절차는 간단하다. 9·19 합의의 근거가 되는 남북관계발전법은 대통령이 '국가안전 보장과 질서 유지'를 위해 '국가안보를 포함한 중대사유 발생시' '남북 합의서 효력을 부분 또는 전체를 효력 정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도발 수준에 따라 합의 전체를 효력 정지할지, 일부 조항만 할지 판단이 달라지겠지만, 국무회의 의결로 내려진 결과를 북한에 통보만 하면 된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 중 기자들과 만나 "(북한) 도발의 내용과 폭에 따라 9·19 합의 내용에 대해서 우리가 필요한 조치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다만 북한에 추가 도발의 명분을 줄 수 있고 이후 군사적 우발 충돌의 가능성의 책임에서도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서 합의 파기 선언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먼저 명분이 확실한 일부 조항에 한해 효력을 정지시킬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