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사랑해~" "친구야 응원한다!"... 격려와 덕담 이어진 수능날

입력
2023.11.16 16:39

"사랑해, 차분하게 잘하고 와!"

비중이 작아졌다고는 하지만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여전히 한해 입시 농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관문이다. 수능날 아침이면 예나 지금이나 전국 모든 고사장에서 긴장감과 간절함이 교차한다. 2024학년도 수능이 치러진 16일 아침 풍경도 그랬다. 부모는 아들·딸을 위해 기도했고, 선생님은 제자를 힘껏 포옹했다. 또 후배들은 선배를 향해 응원가를 목청껏 부르며 결전에 나서는 수험생들을 격려했다.

이날 서울 강서구 명덕고 앞. 오전 7시가 되자 수험생과 부모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부모는 고사장에 들어가는 자녀의 손에 핫팩을 쥐어주고, 손에 들린 도시락 가방을 한 번 더 살폈다. "사랑한다" "응원한다"는 말과 함께 아이를 꽉 끌어안기도 했다. 자녀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하는 모정(母情)도 그대로였다.

아들 허모(19)군이 입실한 후 엄마 정문희(47)씨는 명덕고 정문 앞에서 잠시 두 손을 모았다. 정씨는 "아들이 1교시부터 마지막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게 기도했다"고 말했다. 이모(48)씨는 딸이 도시락 챙기는 걸 깜빡 잊고 시험장 안으로 들어가자, 학교 울타리 너머로 급히 불러 건넸다.

서울 양천구 금옥여고 앞에서 만난 강모(51)씨도 떨리는 마음으로 딸을 응원하러 나왔다. 강씨는 "일주일 전부터 수능 도시락 메뉴와 같은 반찬을 만들어주고 고용량 비타민C 등 영양제도 꼬박꼬박 먹게끔 챙겼다"고 했다. "재수하는 딸을 응원하러 가족이 총출동했다"는 안은경씨는 애틋한 마음 때문인지 입실이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교문 앞을 서성였다.

수능일 응원하면 친구들도 빼놓을 수 없다. 배모(20)씨는 반수하는 친구에게 힘을 보태고 싶어 이른 아침 발걸음을 옮겼다. 손수 만든 주먹밥 도시락을 건넨 후 고사장으로 들어가는 친구에게 "파이팅"이라고 크게 외쳤다. 친구는 "잘 하고 올게"라며 화답했다.

그래도 직접 시험을 치러야 하는 수험생들이 긴장감을 완전히 떨치기는 쉽지 않다. 수험생 진성욱(19)군의 표정에선 담담함이 묻어났지만, 입에선 "막상 시험장 앞에 오니 떨린다"는 반응이 나왔다. 재수생 김하은(20)씨는 "꼭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며 입실 전 마음을 다잡았다.

내년 수능을 보는 예비 수험생들도 함께였다. 이날 명덕고 2학년 학생 8명은 정문에서 수능진행도우미로 활동했다. 밖이 어두컴컴한 오전 5시에 나와 3시간 넘게 수험표 확인과 고사장 입실을 도왔다. 홍지민(18)군은 "미리 수능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 자원했다"면서 "생각보다 엄숙했고, 부모님들이 자녀를 떠나 보내는 모습을 보고 가슴 뭉클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선생님 권유로 현장을 찾은 김시율(18)·전하은(18)양은 "이곳에서 수능시험을 본 모든 선배들이 한 번에 합격했으면 좋겠다"고 덕담했다.

입실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시험장 주변은 밀려드는 차량으로 정체가 심해졌다. 구원투수는 경찰과 모범운전자들. 오전 7시부터 입실완료 시간인 오전 8시 10분까지 명덕고 앞 교차로에서 교통경찰관 2명과 모범운전자 4명이 호루라기와 신호봉을 활용해 수험생들이 늦지 않도록 안내했다. 경찰은 이날 전국 1,279개 고사장 주변에 교통경찰, 기동대 등 경력 1만1,265명과 순찰차 등 장비 2,681대를 투입해 교통흐름을 관리했다.

날이 어둑해지자 명덕고 교문 앞에는 가족들이 다시 삼삼오오 모여 수험생들을 기다렸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한 손에 우산 든 채 까치발을 들고 학교 담장 너머로 아이를 찾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심장이 떨린다"고 말하는 부모도, 초조한 마음으로 휴대폰 시각을 재차 확인하는 이들도 있었다.

마지막 과목인 제2외국어 응시를 마친 학생들이 오후 5시 50분쯤 물밀듯이 고사장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표정엔 후련함과 즐거움이 비치는 한편, 아쉬움이 교차하는 수험생들도 있었다. 부모들은 재빨리 자녀를 찾아 우산을 씌워주고 "수고했어" "엄마도 해방이다" "장하다"라며 어깨를 두들겼다. 수험생 박진서(19)양은 "여태까지 고3이라는 이유로 짜증도 내고 고집도 부린 것 같은데 다 받아줘서 고맙다"며 가족을 떠올리며 웃음 지었다. 염민수(19)군 역시 "평소 열심히 못한 건 아쉽지만 뿌듯하기도 하다"며 "엄마아빠 생각이 가장 많이 난다"고 말했다.


큰 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은 가족, 친구들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며 기대감에 부푼 모습이었다. 재수생 염창명(20)씨는 "앞으로 하고 싶은 거 다 할 것"이라며 "태권도도 하고 오늘 저녁에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실 것"이라고 전했다. 박양은 "가장 머리가 잘 돌아갈 때 운전면허랑 일본어 자격증을 따 놓을 예정"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박시몬 기자
정다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