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에 동원됐다 숨진 퇴역 경주마 마리아주(예명 까미)의 사망 2주기를 맞아 동물단체들이 퇴역 경주마 보호 법안 마련을 촉구했다.
동물자유연대, 제주비건, 국제 동물보호단체 페타(동물을 윤리적으로 대하려는 사람들·PETA) 등 11개 동물단체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은퇴한 경주마가 드라마 촬영장 흙바닥에 곤두박질치며 죽임을 당한 뒤에도 우리 사회는 변한 게 없다"며 "퇴역 경주마는 승마장이나 꽃마차를 전전하는 한편 은퇴 후의 삶은 제대로 기록조차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물단체들은 경주마 이력제(등록제)가 시행되지 않으면서 은퇴한 경주마의 삶이 여전히 '깜깜이'에 머물고 있다고 주장한다. 말산업정보포털 자료를 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경주마(경마에 사용되는 품종인 서러브레드 기준) 1,400여 마리가 은퇴하는데 해마다 절반가량은 폐사 처리되고 있다. 또 정확한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기타' 분류 역시 지난해 기준 10%가 넘었다. 단체들은 "은퇴한 경주마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다 죽는지 제대로 집계조차 못 하는 부조리한 현실에도 한국마사회는 여전히 말 등록 의무 요구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퇴역 경주마 복지 체계 구축을 위한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해 5월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주마, 싸움소 등 사행산업에 이용된 후 퇴역한 동물의 관리 및 복지에 관한 사항'을 동물복지종합계획에 포함하도록 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올해 5월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퇴역하는 동물에 대해 소유자가 보호∙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의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그러나 생산업자 등 산업 관계자들이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법안은 그대로 국회에 계류돼 있다.
이들은 "생명을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은퇴 후 경주마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며 "2년이 아닌, 20년이 지나도 제2의 마리아주는 끝없이 등장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는 임기가 끝나기 전 퇴역 경주마 보호를 위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하고,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마사회는 경주마 복지와 학대 방지 방안을 즉각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뒤 동물보호법 개정안 처리와 경주마 학대 방안 마련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까미의 영정을 마련해 헌화했다. 김란영 제주비건 대표는 "거의 모든 경주마가 1, 2년 새 완전히 물갈이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정부와 마사회는 경주마와 퇴역 경주마의 생존과 전생애 복지체계 구축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당초 지난해 상반기 내로 방송에 출연하는 동물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작하겠다고 밝혔지만 지금까지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 또 지난 8월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태종 이방원 제작진은 관련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