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가 국회 인준을 거쳐 제17대 대법원장에 취임하면, 당장 풀어야 할 문제가 '사법부 신뢰 회복'이다. 역대 최악의 수준으로 악화한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장기간의 수장 공백 사태에 따른 사법부 위상 저하 문제에도 대처해야 한다. 법조계에서는 조 후보자가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지 말고 차분하게 당면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조언이 잇따른다.
가장 시급하게 풀 문제는 재판 지연 사태다. 최근 5년간 사법연감을 살펴보면, 지난해 민사합의 사건의 경우 △1심 420일 △항소심 332일 △상고심 461일이 걸렸는데, 이는 2021년(364일·303일·322일)에 비해 1년 만에 1~5개월 늘어난 수준이다. 특히 대법원의 사건 처리 속도가 크게 느려졌다. 형사사건의 1심 평균 처리 기간(피고인 구속 141일·불구속 223일)도 2021년(138일·217일)과 비교하면 증가하는 추세다. 신속한 재판을 받을 국민들의 권리가 침해됐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제기된 이유다.
서울 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코로나 팬데믹이 있긴 했지만,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사법행정자문회의 등에서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할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 않은 탓이 컸다"며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대법원장이 강력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기 대법원장이 법관 증원 등 제도 개선을 통해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재판 지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제도 문제에 대한 개선책도 내놓아야 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이후 고법 부장판사 승진 제도가 폐지되고 법원장 추천제(일선 법관들이 법원장 후보를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임명하는)가 도입됐는데, 재판을 신속하게 처리한 유인 요소가 줄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다만 이런 제도 개혁 이후 법원 내 수직적 문화가 개선됐다는 평가도 적지 않은 만큼, 과거로의 회귀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한계도 분명히 존재한다.
안철상·민유숙 대법관 후임 임명 제청 문제도 있다. 두 대법관은 내년 1월 1일 임기가 끝나지만, 대법관들은 지난달 "대법원장 없이 대법관을 임명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려, 후임 인선은 신임 대법원장 취임 이후에나 가능하다. 지난해 대법관 1명이 처리한 사건이 4,000여 건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새 대법원장이 최대한 빠르게 제청 절차에 착수해 대법관 공백을 메워야 한다.
법원 내에서는 조 후보자가 '대법원장다운 대법원장'이 될 것을 주문한다. 서울 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정치적 요구에 타협하지 않고, 정치적 공격으로부터 판사들을 지켜주는 대법원장이 됐으면 좋겠다"며 "전임 대법원장들처럼 수사를 받거나 이균용 전 후보자처럼 설화에 휩싸여 사법 신뢰를 스스로 깎아먹는 일은 벌어지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다음 달 1심 선고를 앞두고 있고,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국회에서 거짓으로 해명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