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구역 줄었다는데... 대학가 '금연 전쟁'은 되레 확산, 왜?

입력
2023.10.31 00:10
대학들, 흡연부스 폐쇄·장소 이동 잇따라
거리 먼 탓에 금연구역 흡연 오히려 늘어
손 놓은 대학 당국... 갈등 중재 서둘러야

25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민주광장 인근.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곳은 이달 4일 학교 총학생회가 재학생 설문조사를 거쳐 폐쇄를 결정한 흡연구역. 학생들이 여전히 금연구역에서 흡연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새로 마련된 흡연부스가 너무 멀기 때문이다. 재학생 조모(20)씨는 "도서관 앞 같은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도 흡연은 여전하다"고 했다.

간접흡연의 폐해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대학가도 예외는 아니어서 흡연 피해를 토로하는 민원이 쇄도하자 대책 마련을 서두르는 대학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 흡연구역을 폐쇄하거나 외진 곳으로 변경하는 방식이다 보니 학내 갈등만 부추긴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흡연자는 끽연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홀대에 볼멘소리를 하고, 비흡연자는 그들대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금연구역 확대가 못마땅한 눈치다.

흡연구역 옮겨도... "멀어서 안 가요"

30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주요 대학들은 올 들어 학내 흡연구역 개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고려대는 이달부터 학생회 주도로 기존 인문대·자연대 인근에 설치된 흡연부스 외에 암묵적인 흡연장소였던 3곳을 한 곳으로 통합했다. 한양대도 흡연구역을 기존 27개소에서 24곳으로 축소했고, 서울시립대 역시 15곳이 넘는 흡연부스를 12개소로 줄였다.

금연 확대를 유도하려는 취지는 좋았지만, 결과는 엉뚱하게 흘러갔다. 안 그래도 흡연부스의 환기가 되지 않아 원성이 빗발쳤는데, 흡연장소마저 줄어들자 금연지역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이 더 늘어난 것이다. 실제 서울시립대의 한 흡연구역 공간은 6.61㎡(2평)에 불과해 부스 바깥에서 흡연하는 학생들이 부지기수였다. 비흡연자 이모(22)씨는 "흡연구역을 옮겨도 근처를 지날 때마다 숨을 참고 이동해야 한다"며 괴로움을 호소했다.

뿔이 난 건 흡연자들도 마찬가지다. 고려대 재학생 손모(24)씨는 "유동인구가 많은 곳을 금연장소로 정한 의도는 이해되지만, 대체구역 마련도 없이 무조건 흡연 공간만 줄이는 건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끊이지 않는 흡연 갈등, 대학이 나서야

양측의 불만이 비등한 만큼 흡연 문제 해결을 학생 자치기구에만 맡길 게 아니라 대학 당국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고려대의 흡연구역 조정은 학생회 차원에서 이뤄진 조치였고, 연세대는 공식 흡연구역으로 지정된 곳이 전무하다. 대학이 주도해 부스 구조, 설치 장소 등 구체적 흡연 방법을 놓고 학내 구성원들의 중지를 모아 타협점을 찾자는 것이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교육연구센터 센터장은 "통행량을 고려한 위치 선정과 자연풍 환기 등 면밀한 검토를 거쳐 흡연구역을 만들어야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금연규제 위반에 대한 감독 강화도 필요해 보인다. 지금처럼 학생회 차원의 순찰이나 경비노동자의 계도 조치 정도로는 근절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서울시립대 학생 김모(23)씨는 "미지정 구역에서 흡연하다 경비원에게 적발됐는데 꽁초만 잘 버려달라고 주의만 받았다"고 말했다.

나아가 금연은 학생 건강권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 금연구역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국민건강증진법은 대학 '건물'만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나머지는 학교 자율에 맡기도록 했는데 지자체와 협업을 통해 금연 강제성을 부여하자는 취지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민과 학생 의견이 수렴되면 각 자치구가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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