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위 혐의로 당국 조사를 받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리상푸 중국 국방부장이 결국 해임됐다. 지난 7월 해임된 친강 전 외교부장은 형식적으로나마 유지해 온 국무위원직도 박탈당하며 모든 공직에서 퇴출됐다. 이로써 중국 국무위원 5명 중 2명이 '공석' 상태인 초유의 상황이 연출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3기 체제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는 외부 시선도 더욱 짙어지는 분위기다.
25일 인민일보에 따르면, 중국의 의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는 전날 열린 6차회의에서 리 부장의 국방부장·국무위원·중앙군사위원회 위원 등 모든 직을 면직 처리했다. 또 친강 전 부장에 대해서도 국무위원 면직 처분을 내렸다.
상무위는 두 사람의 해임·면직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친 전 부장은 주미대사 시절 내연 관계에 있던 여성과 대리모를 통해 혼외 자녀를 낳았다는 의혹에 휩싸인 바 있다. 지난 8월 중국·아프리카 평화안보 포럼 행사 참석 이후 공식 석상에서 사라진 리 부장은 군사 장비 조달 업무상 비리 혐의로 당국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국무원은 올해 3월 '시진핑 3기' 내각 출범과 함께 5명을 국무위원으로 임명했다. 왕샤오훙 공안부장과 우정룽 국무원 비서장, 천이친 국무위원, 리 전 부장, 친 전 부장이었다. 그런데 불과 7개월 만에 이들 중 2명이 명확한 설명 없이 실각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물론 내각보다 중국공산당의 정책 결정권이 큰 중국 정치 특성상, 두 사람의 낙마가 국정 운영에 결정적 공백을 초래한다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예사로운 일은 아니라는 분석이 많다. 데니스 와일더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뉴욕타임스에 "중국공산당은 누군가를 제거할 때 그 이유와 설명을 제공해 왔지만 이번엔 아니었다"며 "이런 현상은 중국공산당 엘리트들의 우려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짚었다. 시 주석이 발탁한 인물이라도 언제든 숙청될 수 있다는 내부 불안감이 커질 것이라는 뜻이다. 조지 매그너스 옥스퍼드대학 차이나센터 연구원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주요 인사들의 실각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여전히 중국 정치의 투명성 부족을 보여 준다"고 지적했다.
상무위는 리 전 부장의 후임자도 발표하지 않았다. 홍콩 명보는 "국방부장을 공석으로 둔 이유는 적임자가 없기 때문일 수도, 고위층이 (체제) 안정을 위해 아무나 이 자리에 앉히길 원하진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중화권 언론에선 군 서열 3위 허웨이둥 중앙군사위 부주석 또는 군 서열 5위 류전리 연합참모부 참모장이 신임 국방부장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다.
미국 CNN방송은 "아이러니하게도 리 전 부장 축출은 미중 간 고위급 군사 채널 재가동의 호재가 됐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러시아와의 무기 거래를 이유로 2018년 리 전 부장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미국은 1년 넘게 중단된 미중 고위급 군사 대화 재개를 요구해 왔으나, 중국은 리 전 부장 제재 해제를 전제 조건으로 내세웠다. 그의 해임으로 미중 군사 채널 재가동의 걸림돌이 자연스럽게 사라진 셈이다.
미국 정부는 직접적 언급을 자제했다. 팻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24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리 부장 해임이 미중 국방장관 회담을 앞당기느냐'라는 질문에 "중국 내부 인사이동에 대해선 발언을 삼가겠다"고 답했다. 그는 "다만 (미중 간) 잠재적 오산을 차단하기 위해 열린 대화 채널을 유지할 기회를 계속 모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