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탄 아기, 목 잘린 시신...전쟁 참상 기록 SNS 괜찮나

입력
2023.10.14 14:00
이스라엘-하마스 영상 SNS서 무분별 공유
"간접 목격만으로도 다수가 심리적 고통"
"민간인 인권 침해 증명하려면 보존해야"
거짓 정보로 혼란 가중... 증거 효력 불투명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의 참상이 담긴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민간인 납치 장면부터 아이와 여성들이 참혹하게 살해되고, 시신이 유린된 사진과 영상 등이 여과 없이 쏟아지고 있다. SNS 영상에 무방비로 노출된 전 세계 시민들의 트라우마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면 SNS를 통해 전쟁의 실상을 알리고, 전쟁범죄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선 정보가 공유돼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참사 중계장' SNS, “간접 목격도 트라우마”

전 세계 수십억 명이 가입한 SNS 페이스북과 유튜브, 엑스(X·옛 트위터),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에는 실시간으로 이스라엘 상황이 생중계되고 있다. 틱톡에선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양측 공습 상황에 민간인들이 급히 대피하는 영상이나 도시가 불타는 영상 등이 1,00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공유되고 있다. 전쟁 관련 해시태그마다 누적 조회수는 수십만 회를 넘어섰다. 엑스는 11일 공식 계정을 통해 "최근 며칠간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 관한 게시글이 5,000만 개 이상 올라오고 있다"고 했다.

특히 끔찍한 장면이 담긴 SNS 게시물이 많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7일 오전(현지시간) 이후 SNS에는 양측의 공격으로 파괴된 도시와 희생된 민간인들의 사진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하마스가 공격한 남부 네게브 사막의 한 음악 축제 행사장에서 무장 대원들이 난사한 총탄에 맞아 피를 흘리는 여성 사진도 있었고, 하마스에 무자비하게 납치돼 끌려가는 영상도 올라와 충격을 줬다. 하마스 공격을 받은 다른 지역에서도 불탄 아이의 시신과 도망치다 목이 잘리는 등 잔혹하게 살해된 시신이 도로와 마을 등에 방치돼 있는 사진도 SNS에 그대로 노출됐다.

SNS가 전쟁의 참상을 여과 없이 전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벌어진 전쟁에서 범죄 행위들이 SNS를 통해 확산됐다. 지난 4월 SNS에 올라온 한 영상에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포로를 잔인하게 참수하는 장면과 피해자의 비명이 그대로 담겼다. 고문을 당하다 총살된 시신과 시신을 유린하고 조롱하는 영상도 무분별하게 유포돼 논란이 됐다.

문제는 SNS 영상들이 집단 트라우마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점이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은 주로 참사를 직접 겪은 당사자에 국한됐다"라며 "하지만 SNS가 발달하면서 요즘에는 영상을 통한 간접 경험만으로도 심리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로 증명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한국심리학회 조사에 따르면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트라우마를 호소하며 심리 상담을 받은 이들 221명 중 46%가량이 미디어 등을 통해 참사를 간접 목격한 사례였다. 참사를 직접 목격한 경우(32%)나 참사를 겪고 부상을 입거나 죽음의 위협을 느꼈던 이들(9%)을 합한 것보다 많은 수치다.

SNS 업체 측은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잔인한 전쟁 영상을 삭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엑스는 11일 "유해 콘텐츠에 대해 삭제하거나 제재하는 조치를 취하고, 하마스와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는 계정이나 엑스의 인기 검색어 조작을 시도한 계정 등도 차단·삭제했다"고 밝혔다.

“전범 증거 남겨야”…가짜 정보 도마에

다만 SNS가 전쟁 참상을 보여주고, 기록으로 남겨 전쟁범죄를 증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부인하기 어렵다. 8일 SNS에서 확산된 한 영상에는 트럭 뒤칸에 의식을 잃은 채 반나체로 납치된 한 여성을 하마스 대원들이 조롱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하마스는 납치한 여성을 "이스라엘 여군"이라고 주장했지만, 영상에서 머리 모양과 문신 등을 통해 신원을 확인한 피해 여성 가족들은 '독일 출신 민간인'이라며 풀어줄 것을 호소했다. 하마스의 공격으로 가족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이들은 SNS를 통해 가족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는 중이다.

여행 저널리스트 출신 이호르 자하렌코는 지난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이 수도 키이우 등에서 자행한 처참한 민간인 살해 현장을 SNS에 올려 왔다. 그는 "러시아인들이 (민간인 살해가)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 거짓이라는 것을 밝히고자 영상을 올렸다"라며 "전 세계인들이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하는 끔찍한 전쟁 범죄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가 올린 영상 상당수는 SNS 측에 의해 삭제 조치됐다.

하지만 SNS가 실제로 전쟁 범죄를 증명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짜깁기하거나 조작한 거짓 영상들이 SNS에서 퍼지면서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격화하면서 엑스 등 SNS에서는 가짜정보가 대혼란을 일으켰다. 지난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기습 공격 직후 엑스에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병원에 이송됐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이 글은 당시 조회수가 100만 명에 육박했지만 조작된 영상인 것으로 확인됐다.

8일 하마스가 이스라엘군의 헬리콥터를 격추하는 영상도 SNS에서 빠르게 확산됐지만 비디오 게임 '아르마3'의 한 장면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80억 달러(약 10조7,000억 원) 규모의 지원을 승인했다는 백악관의 가짜 문서도 SNS에서 퍼졌다. 이스라엘 고위 장성이 하마스에 생포된 영상도 순식간에 SNS에서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했지만, 해당 영상은 아제르바이잔 보안국이 지난주 체포한 무장단체 지도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틱톡에서도 2017년 우크라이나 군사 훈련 장면을 마치 현 전시 중계 상황인 것처럼 왜곡된 영상이 퍼졌다. 이 가짜 영상은 당시 틱톡에서 최다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조작하지 않은 현장 영상이라 해도 원본 여부에 따라 법적 효력이 결정된다. 황민구 법영상분석연구소 대표는 “영상은 SNS에 올라가면서 압축되는데 이때 원본인지 아닌지를 분석할 수 없을 정도로 데이터가 손실된다”며 "실제 법원에서도 원본 제출을 요구하기 때문에, SNS 영상이 전쟁 범죄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SNS 업체가 가짜정보와 유해 콘텐츠 유통 방지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으로 가짜정보 피해가 커지면서 유럽연합(EU)은 12일 엑스를 상대로 불법 콘텐츠 처리 적절성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EU는 지난 10일에도 엑스에 공개적으로 이번 전쟁과 관련한 유해 콘텐츠 차단 강화를 요청한 바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0여 년 전 중동 지역 분쟁에서 전 세계 시청자에게 실시간으로 위기 상황을 전해주던 소셜미디어들을 더 이상 신뢰하기 어려워졌다"며 "이번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은 '소셜미디어 이상주의 시대'가 끝났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은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