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통인 줄로만 알았던 이스라엘의 안보 시스템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에 무방비로 뚫린 건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다. 감시탑과 기관총이 차례로 무력화됐고, 이스라엘 본토로 침투한 하마스가 민간인들을 무차별 살해할 때까지도 이스라엘군(IDF)은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첨단 무기들은 물론, 세계 최고 수준의 첩보망까지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 기저에는 ‘안이한 안보 의식’이 있었다는 이스라엘의 자체 평가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익명을 요구한 이스라엘 보안당국 고위 관리 4명을 인용해 지난 7일 하마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조목조목 소개했다. 해당 관리들은 “여러 수준에서 이스라엘 보안국의 병참(작전 지원) 및 정보 공백이 있었다”며 초기 평가 결과를 신문에 전했다. 방어 실패의 요인은 수없이 많지만,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무엇보다 이스라엘군은 ‘첨단 장비’에 과도하게 의존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스라엘 보안 관리 2명은 NYT에 “7일 새벽 가자지구 경계에서 활동 신호가 비정상으로 많이 잡혀 군에 보고했지만, 경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군의 대응이 없었던 이유는 명확지 않다. 다만 유력한 가설은 있다. 이스라엘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당시 근무했어야 할 감시병 등은 기숙사 침대에 누워 있던 채로 사살됐다. 원격 감시 장비와 센서, 기관총만 믿고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다.
단순한 인재(人災)는 아니다. 군은 ‘난공불락’ 시스템만 믿고 국경 방어에 소홀했다. 이스라엘 지브 전 IDF 작전부서장은 “하마스가 터널을 파서 진입하는 걸 막기 위해 국경선에 원격 감시 장치와 무기, 지상과 지하 장벽을 세웠다. 이후 국경 주둔 병력 수를 줄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병력 운용의 문제도 있었던 셈이다.
하마스도 이런 허점을 노렸다. IDF 이동통신국과 국경 감시탑에 드론을 날려 보내 감시 카메라와 움직임 감지 센서를 먹통으로 만들었다. 이어 원격 조종 기관총을 파괴하고, 불도저로 국경 30개 지점을 허물어 진입로를 확보했다. 하마스 요원들은 행글라이더를 타고 유유히 군 기지 4곳에 침투했다. 군은 이때까지도 이상징후를 포착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보고 싶은 것’들만 봤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전역에 깐 도청 시스템을 역이용해 가짜 정보를 흘렸다. 감청한 통화 내용 중 “또 다른 전쟁을 피하려 노력하자”는 말은 이스라엘에서 ‘하마스가 경제 재건에 집중하기로 했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게다가 지난해 두 차례 공세 이후 물러난 하마스는 돌출 행동을 삼갔다. 카타르의 중재에 화답한 하마스 지도부가 국경 폭동을 종식시키는 등 ‘소강 분위기’도 연출했다.
그러나 이는 하마스의 기만전술이었고, 이스라엘은 순진하게 속아 넘어갔다. 하마스 통신 채널 감시는 무력했고, 오히려 ‘독’이 되어 버렸다. 최근에도 차치 하네비 이스라엘 국가안보보좌관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하마스는 매우 자제 중이며, 추가 공격에 뒤따르는 후폭풍을 알 것”이라고 자신했다. 공습 6일 전이었다. 이집트 정보기관이 이스라엘에 “조만간 큰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수차례 경고했지만 이 역시 간과됐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22개 마을에 침투한 사실이 알려졌을 때, 군의 대응은 소셜미디어보다도 느리기만 했다. 통신 단절에 당황한 지휘부는 한 곳에 모이기만 했을 뿐, 공격 규모 자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부대 배치도 엉망이었고, 보고나 대응도 늦어졌다. 댄 골드퍼스 사령관은 “진격 중 다른 여단 사령관을 우연히 만났고, 어느 마을을 탈환할지 우리끼리 임시로 정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결국 이번 사태는 이스라엘군과 보안국의 안이한 안보의식(인적 측면)과 방어체계 운용 실수(구조적 측면)가 합작한 ‘총체적 실패’로 평가할 수 있다. 이스라엘 국가안보회의 고위 관리 출신인 요엘 구잔스키는 NYT에 “그동안 이스라엘은 안보 문제와 관련, 많은 국가들의 (본받을 만한) 자산이었다. (그러나) 현재 이스라엘의 이미지는 ‘그 반대’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