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우리 군인들 멋지다!" "비까지 오는데 뭣하는 짓인지···."
26일 오후 4시 서울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10년 만에 부활한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한쪽에선 첨단무기를 앞세운 우리 군의 위용에 환호를 보냈고, 다른 한편에선 무력을 통해 국력을 뽐내려는 정부 발상을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다. 장시간 교통통제에 볼멘소리를 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이날 건군 75주년 국군의 날을 맞아 열린 시가행진은 전차, 장갑차, 미사일 등 첨단무기와 함께 군 장병 4,000여 명이 참가했다. 행진 두 시간 전인 오후 2시가 되자 광화문광장과 시청역 인근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옥상 등에 구경꾼이 몰리기 시작했다. 이순신 장군상 앞에서 만난 고교생 안건(17)군은 "군에 관심이 많아 경기 부천에서 2시간 걸려 왔다"고 말했다. 베트남전 파병 용사 김순일(78)씨도 "국군의 날 행사를 한다는 소식에 옛날 생각이 나 보고 싶었다"고 했다.
가족 단위로 구경 나온 시민들도 많았다. 7세 손자 손을 잡고 행사를 기다리던 최광산(75)씨는 "어릴 때 국군의 날 행사를 감명 깊게 봐 어린이집도 조퇴시키고 손자를 데려왔다"며 웃어 보였다. 여군 문지현(30)씨는 "현직 군인으로서 부모님을 모시고 왔다"면서 "훈련하느라 고생한 동료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일부 관중은 시청역 인근 국방부 부스에서 나눠준 태극기를 양손에 들고 행진 군인들을 반겼다.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대규모 군 시가행진은 귀한 볼거리였다. 독일에서 온 마크(49)는 "한국인 친구가 알려줘 행사장을 찾았다. 국가를 막론하고 군의 중요성이 커진 만큼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오후 4시 본행진이 진행되면서 환호성은 더 커졌다. 화려한 태권도 시범단 기술에 "멋지다" "수고했다"는 감탄사가 연발했다. 거리에 굉음을 울리며 탱크와 전차, 탄약운반차량이 줄줄이 등장하자, 가족과 친구 이름을 연호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일부 시민은 행사에 참여한 주한미군을 향해 "파이팅"을 외치기도 했다. 오후 5시 행진 종료와 함께 각 부대가 퇴장할 땐 다른 군인들이 우렁찬 함성으로 배웅했다.
그러나 환호 뒤로 보여주기식 국력 표출이 영 못마땅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직장인 조모(29)씨는 "소음 공해에 교통흐름을 방해하면서까지 힘을 과시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다. 김모(63)씨도 "갑자기 안 하던 훈련을 하는 데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언짢아 했다.
참여연대와 녹색연합, 전쟁없는세상 등 시민단체활동가 10여 명은 서울도서관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미현 참여연대 정책기획국장은 "힘을 과시하는 것이 진정으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정부에 묻고 싶다"며 "한국이 갈등을 야기하는 교란지대가 되지 않으려면 외교와 평화에 더 힘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통통제가 이어지면서 대중교통 이용에 혼란을 겪는 시민들도 다수 눈에 띄었다.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정대욱(66)씨는 "비를 맞으며 종로3가에서 경복궁역까지 30분이나 걸어서 왔는데, 여기도 버스가 다니지 않아 막막하다"고 울상을 지었다. 시청역 12번 출구 앞에선 인파가 갑자기 몰려 경찰관들이 "자칫하면 압사사고가 나니 멈추지 말고 얼른 들어가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날 교통통제 전 구간에 교통경찰, 군사경찰 등 1,000여 명을 배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