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 ‘부패’ 법무장관, “정치 음모” 우겨 탄핵 모면

입력
2023.09.17 09:08
주의회 상원, 무죄 판단… 하원에선 압도적 통과
NYT “온건파 공격으로 몰아, 공화 충성심 시험”

자신의 부패 혐의를 고발한 직원과 세금을 동원해 합의하려다 탄핵될 뻔했던 공화당 소속 미국 텍사스주(州) 법무장관이 위기를 모면했다. 온건파의 정치 공세라는 강변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AP통신 등 미 언론에 따르면 텍사스 주의회 상원은 16일(현지시간) 켄 팩스턴 텍사스주 법무장관에 대한 탄핵안을 부결시켰다. 9일간 탄핵안을 심리한 상원은 16개의 탄핵 사유에 대해 ‘무죄’라 판단했고, 이번 심리에서 다루지 않은 4개 사유는 기각했다. 이에 따라 올 5월 20개 사유로 하원에서 탄핵안이 의결돼 직무 정지 상태가 됐던 팩스턴 장관은 3개월여 만에 장관직에 복귀할 전망이다.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와 함께 조 바이든 대통령 및 민주당 정권 공격에 앞장서 공화당 강경파의 지지를 받아 온 팩스턴 장관은 상원 평결 뒤 “진실이 승리했다”며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정치인이나 그들의 강력한 후원자들에 의해 묻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공화당 상원의원 대부분이 팩스턴 장관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탄핵안이 상원을 통과하려면 의원 30명의 3분의 2인 21명의 표가 필요하지만, 12명뿐인 민주당 입장에서는 역부족이었다.

미 뉴욕타임스는 이날 탄핵한 부결 결과가 나오기까지 “공화당에 대한 충성심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팩스턴 장관이 공화당 내 온건파의 공격 대상이 됐다는 인상을 심는 게 변호인단의 전략이었고, 그를 고발한 선임 보좌관들이 법무장관실을 장악하려 했다는 점도 부각됐다고 신문은 전했다.

앞서 하원에서는 찬성 121표, 반대 23표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탄핵안이 통과됐다. 다수인 공화당 의원 상당수가 같은 당 소속인 팩스턴 장관에게 등을 돌린 결과였다.

팩스턴 장관은 추문이 끊이지 않았다. 2014년 증권법 위반, 2015년 증권 사기 혐의로 각각 기소된 그가 이번에 탄핵 직전까지 간 것은 그의 사무실에서 일하던 보좌관들이 2020년 그의 부패와 및 직권남용 혐의를 폭로한 일과 관련이 있다. 당시 연방수사국(FBI)이 팩스턴과 그에게 정치자금을 대던 텍사스 부동산 개발업자 네이트 폴 사이의 유착 의혹을 수사하고 있었는데, 설상가상 보좌관들이 팩스턴을 고발했다. FBI 수사를 방해하고 폴을 돕는 일에 자신들이 동원했다는 이유였다.

이후 해고 등 보복을 당한 이들은 팩스턴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궁지에 몰린 팩스턴은 올 2월 소송을 끝내는 대신 보상금으로 330만 달러(약 44억 원)를 준다는 데 이들과 합의했다. 그러고서는 보상금 지급에 주정부 기금을 쓰게 해 달라며 주의회에 승인을 요청했다. 탄핵을 추진한 한 하원의원은 “팩스턴이 자신의 부당행위에 대한 합의금으로 납세자 기금을 요청하지만 않았어도 탄핵에 직면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상원 판결에도 팩스턴 장관은 여전히 증권 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고, FBI 수사 대상에도 올라 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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