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전문자격시험 도중 응시자가 화장실에 갈 수 있도록 조치를 요구한 국가인권위원회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갔다. 공인중개사 시험을 주관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다.
인권위는 응시자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시험시간에 관계없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게 조치할 것을 권고했으나 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이 권고를 불수용했다고 14일 밝혔다. 인권위는 "공단 이사장이 실행을 담보할 수 있는 구체적 권고 이행계획을 통지하지 않았다"며 "권고를 수용하지 않은 것에 유감을 표한다"고 강조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이 사건 진정인 A씨는 2021년 공인중개사 국가전문자격시험에 응시했다. 공인중개사 시험은 오전 9시30분부터 11시10분까지 100분간 1교시 시험을 치른 뒤, 오후에 2교시(오후1시~2시40분) 100분, 3교시(오후3시30분~4시20분) 50분 동안 총 5과목의 필기시험을 진행한다.
문제는 10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응시자가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다는 공단 측 시험관리 규정에서 비롯됐다. A씨는 1교시 도중 생리현상 욕구를 억누르다가, 감독관에게 말도 못하고 결국 실수를 하고 말았다. 이에 A씨는 인권위에 진정을 냈고, 인권위는 2월 "시험 중 화장실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라며 공단에 시정을 권고했다.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화장실 사용을 제한하는 이유는 일견 납득되지만, 배탈 등 예상치 못한 긴급한 상황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화장실 이용을 허가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산업인력공단 측은 인권위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공단 이사장은 "화장실 이용에 대한 설문조사 등 수험자 의견 수렴을 거친 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하겠다"며 확답을 피했다.
주요 국가시험 중 화장실 이용이 제한되는 것은 국가직 9급과 공인중개사 시험뿐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변호사시험, 공인회계사시험, 토익시험 등은 감독관 동행 및 금속탐지기 수색 등을 거쳐 화장실 이용이 가능하다. 국가직 5급 시험도 올해부터 화장실 이용 제한이 해제됐다.
인권위는 "다수가 응시하고 부정행위 방지 등 엄격한 시험관리가 요구되는 수능 시험도 화장실 이용을 허용하고 있다"며 "배뇨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인 생리 욕구인 만큼, 화장실에 가는 행위는 행동자유권의 보호대상이자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