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기지서 푸틴 만난 김정은, 가장 급한 곳으로 달려갔다

입력
2023.09.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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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을 돕기 위해 이곳에 왔다. 러시아는 서두르지 않고 북한과 모든 군사·기술 협력을 논의할 것이다."
13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년 5개월 만에 재회한 장소는 경제를 상징하는 블라디보스토크도 군사기술을 상징하는 하바롭스크도 아니었다. 러시아의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였다. 푸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북러 군사적 협력의 방점이 위성 개발에 있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분명히 했다. 올 5월과 8월 위성 발사에 잇따라 실패한 김 위원장으로선 오는 10월 예고한 3차 발사 성공을 위해 러시아를 등에 업고 총력전에 나선 셈이다.


푸틴-김정은 이해 맞아떨어진 최적 장소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약 1,500㎞,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약 5,000㎞ 떨어진 극동 아무르주에 위치해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0일 평양에서 열차를 타고 출발해 3박 4일 동안 2,700㎞를 달려 도착했다.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이곳으로 부른 이유는 명확하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필요한 포탄 등 무기를 제공받는 대가로 김 위원장의 가장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위성 발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김 위원장에게 우주 기술은 최고의 유인책인 셈이다.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는 러시아가 임대해 쓰던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2012년부터 6년간 7조 원의 자금을 쏟아부어 만든 '러시아 우주 기술의 집약체'다. 시설이 완공되기 전인 2016년 4월 위성을 실은 소유스 로켓을 처음 쏘아 올린 곳이며, 지난달에는 1976년 이후 47년 만에 무인 달 탐사선 '루나 25호'를 발사했다. 루나 25호는 달 표면에 추락했다.


국제사회 견제에 '최소한의 명분' 확보 의도

북러 군사 협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국제사회에 제시할 명분을 확보할 수 있는 장소라는 분석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북러 정상회담 장소로 정한 것에 "절묘한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북한의 위성 발사는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 위반"이라면서도 "평화로운 우주 개발을 지향하는 국제사회 협약을 끌고 들어오면 러시아나 중국이 북한의 편을 들 수 있는 좋은 명분이 된다"고 전망했다.

우주 개발은 김 위원장에게 '일석삼조'의 의미가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의 완성 △선대가 이루지 못한 분야에서의 치적으로 권력기반 공고화 △북한 사회의 경제적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선전 효과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다.

경호와 신변 안전 측면에서도 최적의 장소라는 의견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푸틴과 김정은 모두 안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만큼, 블라디보스토크 같은 도시의 회담 장소보다는 통제된 우주기지가 안전하다고 봤을 것"이라며 "특히 김정은은 장시간 이동하며 위험에 노출돼 왔기 때문에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우주기지를 선호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핵심 기술까지 북한에 전수할까?

관건은 과연 러시아가 어느 수준까지 북한에 우주 기술을 이전해 줄 것이냐다. 김 위원장은 당장 다음 달 3차 발사 전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으려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재래식 무기를 지원받는 급부로 핵심 기술을 손쉽게 내줄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러시아가 첨단 기술을 신속하게 전수해 줄 가능성은 극히 낮다"며 "핵심 기술인 발사체보다는 위성에 탑재되는 고성능 렌즈 등에 대한 기술적 조언을 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경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