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돌이켜보면 큰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는 해군 군비 경쟁이 있었다. 특히 그 전쟁이 패권을 두고 벌어지는 전쟁이었을 때는 더욱 그랬다. 제1·2차 세계대전 직전, 주요 교전 당사국들은 국가 재정에 심각한 타격이 있을 정도로 해군력 증강에 엄청난 자원을 쏟아부었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영국은 1척 건조비가 1년 정부 예산의 1%에 달하는 드레드노트 전함을 매년 8척씩 찍어냈다. 이 영국 해군에 맞서려던 독일제국은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30~40%를 해군력에 쏟아부어 대규모 함대를 건설했다. 양측은 무서운 기세로 군비 경쟁을 벌이다가 끝내 충돌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일본은 GDP의 20~30%를 군사비로 썼고, 이 중 80%를 해군에 투자해 항공모함과 전함·잠수함을 찍어냈다. 히틀러가 너무 급하게 전쟁을 일으키는 바람에 현실화되지는 않았지만, 독일 역시 이른바 ‘Z계획’이라는 명칭으로 대형 항공모함 4척과 전함 10척 등을 건조하는 데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기 구매 예산은 소모성 예산이다. 국가 예산을 인프라나 산업 발전을 위해 쓰면 그 투자에 따른 다양한 부가가치가 창출되지만, 무기 구매에 돈을 쓰면 그 자체로 매몰비용이 된다. 가령 굴삭기나 화물선 등을 구입하면 이를 통해 건설이나 물자 운송 같은 가치 창출이 가능하지만, 전차나 전투기는 오로지 전투 행위, 즉 무언가를 파괴하는 데만 사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반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나라에서는 무기 구매 예산이 ‘적절한 수준’에서 통제된다. 여기서 적절한 수준이란 해당 무기 구매 예산 집행을 통해 국가에 유의미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안보 위협을 억제·차단할 수 있는 정도를 의미한다. 그러한 예산 규모를 판단하는 과정에는 주변국의 군사 능력과 호전성, 침략 의지 등이 고려되기 때문에 나라마다 적정 수준 국방비는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 역사에서는 주변에 당장 침략 전쟁을 걸어올 만한 위협 세력이 없음에도 적정 수준 이상의 국방비를 지출하며 대량의 무기를 구매하는 나라가 종종 존재해 왔다. 이런 국가는 대개 강력한 무력으로 주민을 억압하고 독재 권력을 유지하는 권위주의 국가이거나 주변국에 대한 침략 의사가 있는 국가였다. 세계대전 직전 독일과 일본의 사례처럼 말이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주변의 어떤 나라가 비정상적인 군비 증강에 나서면 이를 경계하고 대비한다. 두 차례 세계대전 직전 세계 각국의 경계 대상이 독일과 일본이었다면, 현재 세계 각국이 가장 경계하는 나라는 바로 중국이다. 세계 각국의 안보·정보기관과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중국은 비정상적인 속도로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고, 대부분의 군비(軍費)는 공세적 성격이 짙은 해·공군력에 집중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군비 증강은 최근 2, 3년 사이 그야말로 수직상승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은 지난 8월 26일과 8월 28일, 상하이와 다롄에 있는 조선소에서 각각 1척의 신형 전투함을 진수시켰다. 상하이 조선소에서 띄운 배는 ‘054B’로 분류되는 신형 호위함이었고, 다롄에서 진수시킨 군함은 052DL형으로 분류되는 방공 구축함이었다. 최근 해군력 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국이 신형 전투함을 연이어 진수시킨 것은 놀랄 일이 아니지만 문제는 그 규모와 속도다.
054B는 중국 해군이 30척을 배치하고 있는 4,000톤급 범용 호위함 054A의 확대 개량형 정도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진수된 054B는 ‘개량형’이 아닌 완전히 다른 군함이었다. 덩치는 6,000톤 이상으로 커졌고, 미국의 이지스함에 준하는 수준의 신형 레이더·미사일 수직 발사기가 적용돼 공격력·방어력 모두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이 호위함에 적용된 신형 미사일 수직 발사기는 052D나 055와 같은 대형 전투함에 탑재되는 850㎜ 규격의 범용 발사기라고 전해졌는데, 이는 이 호위함이 유형에 따라 120~300㎞급 사정거리를 갖는 HHQ-9A/B/C 함대공 미사일들을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호위함에는 사거리 400㎞의 초음속 대함 미사일과 중형 해상작전헬기, 예인·가변심도소나 등 다양한 첨단 장비가 들어간다. 이 정도 덩치와 성능은 어지간한 유럽 선진국의 1선급 주력 전투함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중국은 이런 054B를 ‘주력함’이 아닌 ‘보조함’으로 건조해 055·052DL과 같은 대형 전투함을 보조하는 전력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1번함 진수 전 2개 조선소에서 4척이 동시에 건조되고 있는 정황이 확인됐기 때문에 올해 말 또는 내년 초까지 3척이 더 진수될 예정이고, 향후 5년 내 최소 18척이 건조된다고 한다. 주력함급 대형 전투함을 연간 3, 4척씩 찍어낸다는 말이다. 물론 이보다 더 큰 055형이나 052DL 구축함 역시 각각 연평균 2, 3척씩 진수되고 있다.
중국이 이렇게 나오자 일본도 맞불을 놨다. 중국이 054B 호위함을 띄운 당일, 일본 방위성은 2022년부터 2031년까지 22척을 건조할 예정이던 5,500톤급 범용 호위함 ‘모가미급’ 도입 사업을 전면 수정한다고 발표했다. 기존 설계를 변경해 보다 대형화되고 성능이 강화된 모델을 건조하는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신형(新型) FFM’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호위함은 당장 내년부터 2척 건조가 시작될 예정인데, 일본 정부가 2척 건조 예산으로 책정한 비용은 1,747억 엔, 약 1조6,000억 원이다. 중국의 054B가 전작에 비해 50% 커진 것처럼 일본 신형 FFM도 명목상 기존 호위함의 개량 모델일 뿐, 주요 설계가 완전히 바뀌고 배수량도 1,000톤 이상 커졌다.
이 호위함도 어디까지나 ‘2선급’으로 분류되지만, 유럽 강대국의 주력 전투함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덩치와 전투력을 가진 괴물로 계획되고 있다. 이 호위함은 ‘일본판 SM-6’로 불리는 장거리 함대공 미사일을 기본 무장으로 현존 최고 수준의 대잠 장비가 탑재될 예정인데, 현재 계획으로는 2031년까지 12척이 건조될 예정이다.
한국도 중국과 일본처럼 전투함 대형화 추세에 맞춰 최근 상당히 커진 덩치의 호위함을 내놓고는 있다. 최근 잇따라 등장하고 있는 ‘대구급’과 ‘충남급’은 대체 대상인 포항·울산급보다 커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주변국의 호위함보다는 작고 성능이 떨어진다. 충남급은 진수 당시 ‘미니 이지스함’으로 선전됐지만, 탑재된 함대공 미사일의 사거리가 대단히 짧고, 미사일 탑재 발수가 적어 생존성이 매우 취약하다. 주변국 군함이 탑재하는 함대공 미사일의 사거리는 100㎞ 단위지만, 충남급은 고성능 레이더를 탑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거리 20㎞짜리 단거리 함대공 미사일만 탑재하고 있다. 물론 군 당국도 개량 계획을 가지고는 있다. 국산 지대공 미사일인 L-SAM을 기반으로 장거리 함대공 미사일을 만든다는 이 계획은 최근에야 그 계획이 통과돼 10년 후에나 ‘개량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충남급 이전의 대구급에는 그러한 개량 계획이 없고, 그런 개량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어진 인천급은 21세기에 등장한 호위함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사거리 10㎞도 안 되는 근접방어용 무기’만 달려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대구급이나 충남급 모두 최근 주변 정세와 새로운 안보 위협에 대처할 수 있도록 고안된 배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수립된 일정에 따라 등장하고 있을 뿐이며, 주변국의 새로운 무기체계나 전술에 대한 대비가 거의 되어 있지 않다. 최근 군사전략을 완전히 바꾸었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는 북한이나 국방예산을 큰 폭으로 증액하고 있는 주변국의 움직임을 보고 있다면 이에 대응한 대비책을 내놓을 만도 한데,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국방예산안은 올해 대비 고작 4.5% 올랐을 뿐이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동결이다. 이제는 안보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경제 전문가들도 중국의 경제 불안과 이로 인한 ‘돌발행동’에 대한 경고들을 쏟아내고 있는 상황에서, 당면 위협을 보고도 팔짱 끼고 ‘모르쇠’ 중인 대한민국 정부에 진짜 위기가 오면 뒷감당을 어찌하려는 것인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