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구의 세계화

입력
2023.08.30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족구가 시작된 건 1960년대 후반 대한민국 공군에서다. 대구의 제11전투비행단 조종사들이 출동 대기 중 활주로 주변에서 배구네트를 바닥에 내린 뒤 배구공이나 축구공으로 경기를 한 게 원조다. 처음엔 발로 하는 탁구란 의미에서 ‘족탁구’로도 불렸다. 세부 규칙을 만든 건 당시 정덕진 대위와 안택순 중위다. 공군에서 출발한 족탁구가 육해군으로 확산된 건 68년 국방부의 창안제도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뒤다. 체력 단련과 협동심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평가되며 74년에는 국방부 체력관리 책자에도 실렸다.

□ 족구를 즐기던 장병들의 전역은 민간 확산의 계기가 됐다. 4명 이상이고 공과 작은 공터만 확보되면 축구보다 훨씬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MT나 야유회, 워크숍, 체육대회에선 필수가 됐다. 다만 동네마다 룰이 달라 경기 전 규칙 합의는 필요했다. 1990년 대한족구협회가 창립되며 룰이 통일되고 전국 단위의 대회도 열리기 시작했다. 문체부장관기 전국족구대회는 올해 26회째다. 족구 코리아리그는 물론 시니어 전국족구대회, 전국여자족구대회도 개최되고 있다. 선수들의 공중제비 돌려차기, 안축차기, 발날차기, 발등차기, 밀어차기 등의 현란한 기술은 감탄을 자아낸다.

□ 족구는 이제 해외로 뻗어가고 있다. 최근 강원 양구군에선 제1회 세계족구대회도 열렸다. 체코, 슬로바키아, 이라크, 아일랜드, 태국 등 11개국 110여 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우리나라는 전 경기에서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우승했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종주국이라는 부담이 컸다.

□ 태권도에 이어 족구도 우리나라가 종주국이면서 전 세계인이 즐기는 스포츠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족구와 비슷한 세팍타크로는 이미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고 유럽에선 족구와 비슷한 풋넷도 인기다. 올림픽 종목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이를 위해선 먼저 전국체전 정식종목으로 채택돼야 한다. 더 이상 복학생이나 하는 운동이 아닌 만큼 주저할 이유도 없다. 2014년 영화 ‘족구왕’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신이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건 바보 같잖아요.” 전국 50만여 명의 족구왕을 응원한다.

박일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