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청라신도시 하면 떠오르는 고층 아파트 숲을 통과해야 나오는 주택 단지. 고만고만한 집들이 모여있는 단지 끝자락에 유유자적한 모습으로 자리한 2층집은 송유원(41) 혜옥(41)씨 부부와 두 명의 자녀가 살고 있는 '소담원재'(昭譚園齋·대지면적 357.2, 연면적 199.87)다. 이름 그대로 밝고 편안한 마당을 품은 집이다.
올해로 결혼생활 14년 차인 부부는 마당 있는 집에 정착하기까지 여섯 차례나 이사를 했다. 집을 옮길 때마다 남편의 직장이 있는 서울 도심부와는 점점 멀어졌다. "좀 더 나은 주거 환경이 뭔지 끊임없이 질문한 결과예요. 그러면서 집은 재화가 아닌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죠." 연고가 없는 청라신도시에 터를 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워라밸(일과 휴식의 균형)을 강조하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과 활동이 점점 늘어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집이야말로 행복의 필요조건이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침 연년생 두 자녀도 청소년기에 접어들었다. 부부의 질문도 바로 이 시점에 방향이 바뀌었다. "꼭 아파트일 필요가 있을까. 지금까지는 집에 삶을 맞췄다면 앞으로는 우리 위주로 집을 맞춰보면 어떨까. 그때 떠오른 것이 주택이었죠."
밑그림을 그려줄 전문가로는 홍만식 건축가가 이끄는 리슈건축이 낙점됐다. 견적 위주로 상담하던 다른 건축사사무소와 달리 가족의 라이프 스타일과 바라는 삶의 모습을 자세히 물은 홍 소장에게 디자인부터 감리까지 전적으로 맡겼다. 그로부터 2년여 후 "전통 건축을 현대의 라이프 스타일과 연결한다"는 작업 철학을 충실히 구현한 2층 단독주택이 완성됐다. 외관은 요즘식으로 간결하고 세련됐지만 들여다보면 정자와 대청마루에 무려 네 개의 마당을 갖춰 모던 한옥이라 부르기에 어색함이 없는, 전통과 현대가 묘한 콘트라스트를 만들어내는 집이다.
도시 한옥 전문가의 장기를 살린 집은 전형적인 현대식 주택에서 탈피한 색다른 레이아웃이 여럿 눈에 띈다. 그중 가장 돋보이는 것이 한옥 마당을 연상케 하는 네모 마당. 현관에서부터 집 깊숙한 곳까지 네 개의 마당을 물 흐르듯 배치했는데 각 마당이 내부 공간과 뒤섞이며 정원이자 놀이터, 때로 오브제로 변신한다. 법에서 허용하는 건폐율(대지면적 대비 건축 바닥면적 비율)을 채우고 남겨진 공간, 즉 '비(非)건폐지'라는 말로 마당을 개념화한 건축가는 "마당은 자연을 끌어들이면서도 여러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반응할 수 있는 건축 언어"라며 "건폐율을 채우고 남은 공간을 열린 공간으로 조성해 쓸모를 찾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 마당은 손님을 맞는 바깥마당이다. 환대의 공간이자 텃밭으로도 가꾸는 공간으로 문을 밀고 들어가면 가장 처음 맞는 풍경. 두 번째 마당은 집의 중심이 되는 중정으로, 1층 다이닝 공간과 대청을 연결하고 2층 안방과 거실의 시선이 모인다. 모든 공간의 접점이 되는 이 마당은 배롱나무를 심은 작은 정원과 가족만의 캠핑장이자 바비큐장으로 쓰이는 자투리 공간과도 연결돼 쓰임새가 무궁무진하다.
세 번째 마당은 2층 거실과 별채 사이에 있는 테라스. 두 공간을 연결하는 석재 덱은 "아파트화를 방지하는 공간"이라는 설명대로 작은 공간이지만 바깥 공기와 경치를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그리고 계단실에 조성된 내부의 숨은 정원이 네 번째다. 지붕에서 천장까지 통으로 뚫어 만든 일종의 '광정(光井)'인데 종일 볕이 일렁인다. "누구나 동경하는 마당이 일상에 녹아들기 위해선 생활로서 가치가 있어야 해요. 라이프 스타일을 담는 건 전통을 삶으로 끌어들이고 누릴 수 있는 가장 근사한 방법이죠."
신도시 한복판에 있는 주택에 전통과 모던함을 믹스한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오래 머물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매력을 불어넣기에 그만한 방법이 없다고 믿는 건축가는 집의 중심에 '대청'을 설치했다.
전통 한옥의 대청마루를 연상케 하는 좌식 공간은 'ㄷ'자형 집의 가운데 부분에 해당한다. 마당을 바라보는 1층 대청을 사이에 두고 부엌과 다이닝이 합쳐진 아내의 공간, 서재 겸 취미실로 쓰는 남편의 공간으로 양분되는 구조다. 홍 소장은 "전통적 미감을 녹여낸 공간에서 라이프 스타일을 놀이하듯 즐겼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들었다"며 "각 공간의 열고 닫기를 선택적으로 하면 기능이 더 넓어진다"고 설명했다. 부부가 집에서 가장 애정하는 공간도 바로 이곳. 남편은 "미닫이문을 닫으면 완전히 밀폐되지만 열어놓으면 대청과 마당까지 시선이 열린다"며 "편안하면서도 늘 새로운 감흥을 돋워주는 공간"이라고 만족해했다.
층고 높은 거실에 방이 쪼르르 붙어있는 2층은 아파트와 거의 유사한 풍경이 펼쳐지는데 이곳에는 독특한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숨어있다. 거실 앞 테라스에 연결된 정자가 그것. 열린 큐브 형태로 만든 평상과 작은 방으로 구성된 별채는 집의 가장 높은 곳에서 다양한 뷰를 관망하며 쉴 수 있는 명당이다. 전통의 교과서적 해석으로는 쉽게 정의할 수 없는 '간헐적' 놀이터에 가족들은 '담소정'이라는 이름을 지어 붙였다. "일상을 잠시 차단해주는 비밀 아지트 같은 공간이랄까요. 뭔가 창의적인 일을 도모하기에 안성맞춤이죠. 요즘은 아들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방으로 쓰고 있답니다." 이어진 건축가의 말. "비워놓은 공간에 자분자분 생활이 채워지는 모습을 볼 때 뿌듯해요. 우리 건축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은데, 이렇게 삶과 연결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심미안과 행복감이 쌓이죠. 전통을 실제 삶의 요구를 해결하기 위한 관점으로 보면 다양한 팁을 얻을 수 있어요."
비움으로 채운다는 한국식 미감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은 공간에 새로운 일상을 채우는 집. 지난 일 년 동안 여백의 힘을 제대로 경험한 가족에게 집이란 삶의 '나머지'를 상상하게 하는 베이스캠프 같은 존재다. "공간이 쓰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니 그만큼 많은 상상을 할 수 있어요. 예전엔 밖으로 나가기 바빴는데 이제는 주말 중 하루는 집 안에 머물며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지요. 최근에는 아이들의 제안으로 집 안 전체를 게임장으로 꾸며 방 탈출 게임을 했는데 꽤 재밌더라고요. 아파트라는 획일적인 공간에서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생기죠."
집에도 여백이 필요하듯 인생도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여유 있게 흘러가야 한다고 믿는다는 건축주 부부. 세상의 방식에 휘말리지 않고 그들만의 공간을 꾸려 생활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모습은 소담한 집과 꼭 닮아있는 듯했다. "이 집이 주는 여유가 자투리 시간이 될지, 또 다른 가능성이 될지는 차차 알게 되겠지요. 확실한 건 그런 일상이 모여 창의적인 삶을 만든다는 거예요. 이 집에서 우리 부부도, 아이들도 내면의 자유를 좇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