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역사를 거스른 정치인들

입력
2023.08.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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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9 미국 시민권법의 진통

인종과 피부색을 이유로 시민의 투표권을 거부하는 등의 차별을 금지한 미국 수정헌법 15조는 1870년 비준됐다. 하지만 이후로도 근 100년간 주별 선거법과 투표세 등 제도적 장벽으로 남부 다수 주의 흑인 참정권은 보호받지 못했다. 그 장애물들을 일거에 걷어낸 게 1957년 민권법이고, 차별 범주를 성별·종교 등으로 확장한 게 64년 민권법이다. 두 법이 통과된 과정은 한국의 생활동반자법이나 차별금지법 못지않게 험난했다.

57년 민권법은 당시 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 스트롬 서먼드(Strom Thrumond, 1902~2003)의 미국 역사상 최장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 끝에 통과됐다. 그는 8월 28일 오후 8시 54분 단상에 올라 주별 선거법을 읽기 시작해 역대 대법원 판결과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조지 워싱턴의 고별 연설 등을 낭독하며 다음 날 밤 9시 12분까지 무려 24시간 18분여 동안 연설을 이어갔다. 극렬 인종차별주의자로 주지사 시절부터 대선 후보 해리 트루먼의 시민권 공약을 "전체주의적 음모”라고 비난했던 그는 57년 연단에서도 민권법을 악법으로 규정하고 “상원이 법안을 폐기(kill it)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설 전날 건식찜질로 체내 물기를 최대한 말리기까지 했다는 그는 연설 도중 허용된 한 번을 빼고 만 하루 동안 화장실에도 가지 않아 ‘비뇨기학적 미스터리’란 말까지 들었다. 법안은 그의 연설이 끝난 지 2시간여 만에 통과됐다.

64년 민권법 역시 장장 60여 일간의 진통과 로버트 버드(Robert Byrd) 상원의원의 14시간 13분 필리버스터 끝에 특별정족수(정원의 2/3인 67명)를 넘겨 71대 29로 통과됐다.

서먼드는 남부 차별주의자들의 지지 속에 역대 최고령 상원의원(100세)으로서 자신의 권력을 누렸지만, 저 필리버스터 기록과 더불어 부끄러운 정치인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