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관광지엔 인스타 사진만 있고 문화가 없다" 외국인의 쓴소리

입력
2023.08.30 16:00
5면
<사라진 마을 : 오버투어리즘의 습격>
<3> 저가 관광과 손잡은 시장님
트립어드바이저 외국 관광객 후기 997개 분석
"어린왕자 조형물 사진 찍으려면 50m 줄서"
"관광객에 형편없는 물건 파는 상점들 즐비"
"주민 피해에 미안…너무 많이 안 왔으면"

편집자주

엔데믹(코로나19의 풍토병화)과 유커(중국 단체 관광객)의 귀환이라는 희소식에도 웃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마을형 관광지 주민들이다. 외지인과 외부 자본에 망가진 터전이 더 엉망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국내 마을형 관광지 11곳과 해외 주요 도시를 심층 취재해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의 심각성과 해법을 담아 5회에 걸쳐 보도한다.


'한국의 마추픽추'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선 젊은 사람들이었다.
독일 관광객이 여행 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에 부산 감천문화마을을 평가하며 남긴 후기

외국 관광객들은 한국의 마을형 관광지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한국일보는 세계 최대 여행사이트인 '트립어드바이저'에 올라온 외국인들의 불만 후기를 분석했다. 그들의 솔직한 속내를 읽기 위해서다. 분석 대상은 2015년부터 서울 북촌한옥마을과 익선동 한옥거리, 부산 감천문화마을, 인천 동화마을, 통영 동피랑문화마을, 제주 우도 등 6곳에 대해 평점 3점 이하(5점 만점)를 준 후기 997개다.

"문화적인 것은 없으니 속지 마라"

외국 관광객들은 국내 마을형 관광지들이 '인증샷'을 남기는 데 특화돼 있다고 평가했다. '인스타 감성'(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분위기)의 사진을 찍기엔 좋지만 기대했던 '로컬 감성'(특유의 지역성)을 느끼기는 어려웠다는 뜻이다. 997개의 후기에 '사진'이라는 단어(셀카 등 포함)는 모두 367회 등장했는데 부정적 맥락으로도 많이 사용됐다.

핀란드에서 온 관광객은 감천문화마을에 별점 3점을 주며 "어린왕자 조형물과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50m나 서야 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감천문화마을은 (지역민의 삶의 채취를 느낄 수 있는) '마을'이라기보다는 '관광지'였다"고 지적했다. 이 마을에 평점 3점을 준 말레이시아 관광객도 "'문화'라는 단어에 현혹되지 말라. 이곳엔 문화적인 것은 전혀 없다"고 적었다. 영국 관광객은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가 있었지만, 커피숍과 관광객용 상점이 줄지어 있었다"면서 "(감천문화마을을) 한국의 산토리니라고 마케팅하는데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리버풀 FC와 3부 리그 팀을 비교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인천 동화마을을 관광한 싱가포르인도 "사진을 찍기엔 좋지만 특별한 게 없다. 30분이면 (둘러보는 데) 충분하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을 마을에 오래 머물도록 유도해 지갑을 열게 하는 세계적 관광 흐름과 동떨어졌다는 평가다.

투어리스트 트랩'(tourist trap)이란 단어도 13회 등장했다.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명소'라는 뜻이다. 한 외국인은 감천문화마을에 대해 "이곳도 한때는 풍부한 문화적 매력이 있었을 것"이라면서도 "이제는 관광객들에게 형편없는(crap) 물건을 파는 상점들이 있다"고 비판했다. 한 캐나다인은 "(북촌은) 투어리스트 트랩에 가깝다"면서 "음식과 음료, 상품에 바가지를 씌우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후기에는 기념품(61회)이나 아이스크림(30회) 등 디저트에 대한 언급도 자주 등장했는데, 비싼 가격 등이 불만스럽다는 내용이 많았다.

외국 관광객, 오버투어리즘엔 '복잡한 시선'

외국 관광객이 '오버투어리즘'(특정 지역에 너무 많은 관광객이 몰려 주민 삶이 침범당하는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했다. 고통 당하는 주민에게 연민을 느끼면서도, 환대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은 탓에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북촌을 방문했던 영국인은 별점 2점을 줬다. 북촌 자체가 매력 없는 관광지라서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주민들에 미안한 감정을 느껴 너무 많은 인파가 찾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는 "(북촌 한옥은) 한국의 역사적 건축물로 가치가 있다"면서도 "안타까운 건 그 집에 실제 사람들이 사는데 관광객들이 끝없이 사진을 찍고 엄청난 소음을 내며 민속 의상(한복)을 입은 낯선 사람들이 (사진 찍기 위해) 문 앞에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한 태국인도 "관광객이 넘쳐나는 지역을 보니 주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관광객들은 불만도 표출했다. 한 외국인은 "지역민이 관광객들에게 분노를 표현하고, 그들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 알리는 현수막이 있었다"면서 "시끄럽고 무례한 방문객에 대한 부담은 이해할 수 있지만, 모욕적 메시지 대신 해결책을 찾기 위해 관광 당국과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광의 역습 - 참을 수 없는 고통, 소음> 인터랙티브 콘텐츠 보기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82517140000790


<글 싣는 순서>

①마을형 관광지의 흥망사

②비극은 캐리어 소리부터

③저가 관광과 손잡은 시장님

④다가오는 관광의 종말

⑤숫자보다 중요한 것들

유대근 기자
박서영 데이터분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