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산동 우리동생동물병원 김재윤 원장은 이곳을 찾는 반려견 ‘박보리’(시추∙14)에 대해 묻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실제로 보리는 우리동생에 방문했을 때부터 간 상태가 매우 안 좋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지난 1월에는 엉덩이 부위에 종양이 발생해 수술을 받아야 했다고 합니다.
보리 보호자 송영은 씨는 "처음에는 엉덩이 부위에 작은 덩어리가 보였다"면서 "덩어리가 점점 커지더니 어느새 그 부위에서 피가 나 이불에 묻을 정도로 심해졌다"고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처음에는 수술을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보리의 나이가 적지 않아서였습니다. 김 원장도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그는 "종양 자체만으로 마취를 해야 하는 건 사실 비합리적"이라면서도 "피가 날 정도로 종양이 자랐다면, 피부가 뜨거워질 정도로 작열감이 느껴졌을 것"이라며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그렇게 보리는 수술을 받고 통증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허약 체질인 보리는 항상 돌봄을 받아야 되는 친구였습니다. 보리의 고질병은 ‘건성각결막염’. 눈물의 분비량이 적어지면서 안구가 건조해지고, 각막과 결막에 염증이 발생하는 질병입니다. 안구가 마르는 만큼 미세하게 찢어질 수 있고 세균성 각결막염이 발생할 수도 있죠. 김 원장은 “개의 경우는 가장 큰 원인이 나이”라고 건성각결막염의 원인을 설명했습니다. 치료보다는 더는 상태가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는 질병이죠. 영은 씨는 “지난해 8월부터 보리가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앞을 잘 못 보는 모습을 보일 때 마음이 좋지 못했다”고 눈 질병을 처음 마주한 순간을 털어놓았습니다.
보리는 생후 2개월 무렵인 2009년 영은 씨의 반려견이 되었습니다. 집에 온 첫날부터 보리는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건 단순히, 보리가 작고 귀여워서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때부터 보리는 가족들이 좋아할 행동만 했다고 합니다. 보통 생후 1년이 되기 전에 강아지를 키우다 보면 말썽을 피우는 까닭에 골머리를 앓는 경우도 있죠. ‘강아지는 이갈이를 하며 물건을 물어뜯는 등의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영은 씨 가족은 잔뜩 긴장하며 보리를 대했지만, 정작 보리에게서 그런 행동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대소변도 특별한 교육 없이도 잘 가리며 보호자를 안심시켰죠. 게다가 산책을 할 때도 매너를 잘 지켰다고 해요.
물론 그만큼 영은 씨 가족도 보리와 함께 잘 지내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온 가족이 돌아가며 보리와 함께 놀아줬고, 그 덕에 보리는 모든 가족과 친근감을 갖고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어린 시기에도 자잘한 피부병을 제외하고는 크게 문제가 없었죠.
그런데, 보리가 13세가 된 지난해 8월. 이상한 점들이 영은 씨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보리의 앞에 영은 씨가 있었음에도 보리는 두리번거리며 영은 씨를 찾는 듯한 행동을 보였습니다. 영은 씨가 “보리야” 하고 부르면 그제야 영은 씨에게 다가갔습니다. 일상적인 모습이 아니라고 느낀 영은 씨는 급히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건성각결막염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처음 찾아간 동물병원에서는 안약을 5개씩 처방하며 5분 간격으로 눈에 넣어주라고 했습니다. 영은 씨는 비싼 비용도 비용이지만, 영문도 모르고 여러 안약을 한꺼번에 넣어야 하는 보리가 고역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수소문해서 알게 된 우리동생 동물병원에서 다시 진단을 받은 뒤에는 안약을 1개로 줄였습니다. 소위 ‘기름안약’이라 불리는 사이클로스포린 안약이었습니다. 김 원장은 “처음 진단받았을 때에는 안구가 말라 있는 상태라 세균 감염을 막기 위해 항생제 안약을 같이 처방하겠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는 안약 하나만 제때 주입 잘 해주면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안약이 1개로 줄어든 대신 영은 씨는 안약 투여 시기를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김 원장이 제시한 안약 투여 주기는 최소 1일 2회. 영은 씨는 “아침에 출근할 때 한번, 퇴근하고 한번, 자기 전에 한 번씩 안약을 넣어주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주기적으로 안약을 넣어주자 효과도 나타났습니다. 두리번거리는 행동도 줄어들었고, 눈에도 다시 윤기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산책할 때도 좀 더 자신 있게 걸으며 다른 반려견들과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모든 게 예전처럼 돌아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보리는 밤잠도 줄었고, 산책을 할 기력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산책 시간은 20분 정도로 줄어들었고, 더 길게 산책을 하고 싶다면 개모차에 의존해야 하죠. 고질적인 피부병은 여전히 보리의 몸 곳곳에 남아 있고, 이제는 귀도 잘 들리지 않아 영은 씨의 목소리에도 반응을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원장은 “보리는 오래 살 것 같다”고 말합니다. 허약 체질인 강아지들이 병원 신세를 지면서도 오래 산다는 의미도 담겨 있지만, 그보다는 보리의 보호자인 영은 씨의 규칙적이고 주기적인 패턴이 더 보리의 삶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뜻이 더 강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그만큼 아침에 일어나서 산책을 다녀오고, 보호자가 퇴근해 집에 돌아오는 저녁 시간에 보리와 함께 놀아주는 시간을 잘 지키고 있다는 뜻이죠.
보리 역시 10시에 잠시 졸다가도 영은 씨가 “보리야 놀자~”고 말하면 벌떡 일어나 놀이를 즐긴다고 하네요. 그는 “물론 노견이 나이가 들면 잠이 많아지지만, 그렇다고 잠들게만 내버려 두면 그것도 건강에 좋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습니다. 자주 뇌 기능을 깨워줘야 건강한 삶도 가능하다는 뜻이죠.
나이 들어서 생기는 병들이 보리를 성가시게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보리는 보리만 바라보는 보호자가 있기에 편안해 보이는 듯합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 영은 씨가 보리에게 무엇을 해주고 싶을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을 던지자 평온하던 영은 씨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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