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족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에게 실형을 선고한 1심 판결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다툼은 실형을 선고한 판사 개인의 과거 행적과 정치적 성향으로까지 번지는 중이다. 국민의힘은 "정치적 판결"이라는 비판을 멈추지 않았고, 법원은 이례적으로 유감 입장문을 내며 "개별 판사에 대한 공격을 삼가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박병곤 판사는 10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정 의원에게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정 의원은 2017년 9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노 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와 부부싸움을 한 끝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박 판사는 "구체적 근거 없이 단정적 표현으로 전직 대통령 부부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악의적 공격에 해당하므로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일단 법조계에서는 혐의를 유죄로 본 것 자체는 수긍할 수 있지만 단건의 명예훼손에 실형을 선고한 사례가 많지 않았던 점에 비춰, 이례적 형량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관련 사건을 다뤘던 법조인들 얘기를 들어보면, 정 의원 사건과 비슷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는 경우 대체로 벌금형이 나오고, 심각하면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최근 정치인의 유사 사건을 보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1심에서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았고, 세월호 유가족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차명진 전 의원은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과거 정봉주 전 의원이 2007년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BBK 주가조작 연루설'을 퍼뜨린 혐의로 징역 1년의 실형을 받은 사례가 있지만, 발언 시점이 대통령 선거 직전이라는 시기적 특성이 있었다.
결국 박 판사가 이번에 집행유예 없는 실형을 선고한 것은 정 의원 행위를 '매우 악의적'이라고 봤다는 얘기다. 다만 이 사건에서 정 의원의 글은 1개에 불과했고, 정 의원은 법정에서 혐의를 인정하며 유족에게 사과했다. 한 형사 전문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 부부에게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한 것 같지는 않다"고 평가했다. "정 의원이 글을 쓸 때(2017년) 노 전 대통령 부부는 공인이 아니었다"는 박 판사의 지적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판결 이후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에선 판사 개인에 대한 비판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과거 박 판사가 법관으로 임용되기 전 SNS에 야권 성향의 글을 올리고 야권인사들을 상대로 친구 요청을 했던 사실이 드러나자, 발언 수위는 거세졌다. "판사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논평(전주혜 대변인)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를 두고는 법관의 과거 행적까지 들춰내며 판결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그간 피해자의 일상을 무너뜨리는 허위사실 유포에 더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은 논란이 이어지자 13일 "판사의 정치 성향을 거론하며 과도한 비난이 제기되는 상황에 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판결문으로 말하는 법원이 개별 판결에 관한 입장을 별도로 내는 것은 이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