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가 ‘비평준화 학교’라도 같은 곳에 진학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 판단이 나왔다.
11일 인권위에 따르면, 경북의 한 중학교에서 동급생에게 폭행을 당해 전치 8주 피해를 입은 A군은 올해 1월 가해자와 같은 고교에 진학해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피해자 측에 따르면 지난해 1월 가해자 B군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결정에 따라 다른 중학교로 전학 조치됐다. 하지만 바로 2개월 뒤 중학교 졸업과 함께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고교에 입학하며 다시 만났다. 두 학생 모두 해당 비평준화 고교에 지원해 합격한 탓에 전학 조치가 무의미해진 것이다. A군은 이미 고교 입학이 결정된 상황인 만큼 학교 측과 교육청이 가해자를 전학 조치해야 했으나 제대로 처분하지 않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교육청은 학폭위 결정이 중학교 재학 중에 내려져 전학 조치도 고교 입학 전 이행했다는 입장이다. 또 두 학생이 배정이 아닌 ‘선발’ 방식의 비평준화 학교에 진학해 분리 조치를 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르면, 전학 조치된 가해자와 피해자가 상급학교에 진학할 때는 각각 다른 학교에 배정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으나, 비평준화 학교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인권위는 교육청이 학폭예방법의 입법 취지를 외면하고 규정을 소극적으로 해석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가해 학생의 전학 시기를 고교 입학 뒤로 조정하거나 학폭위 결정 내용을 해당 고교에도 통지해 두 학생이 함께 입학하지 않게 했어야 했다”며 “진정인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위는 교육부에 학폭예방법 해석에 따른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항 개정을 권고하는 한편, 관할 교육청에 피해 학생 보호를 위한 적절한 실무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