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만큼 중요한 바닷속 지형 개척

입력
2023.08.0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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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차 시도 끝에 우주 궤도에 진입 성공한 누리호의 발사는 온 국민에게 큰 자긍심을 안겨 주었다. 한국은 이로써 자국기술로 우주선을 궤도에 올린 세계 7대 우주강국의 반열에 올랐다. 수없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루어 낸 신념의 결과이다. 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은 수십 년 만에 우주복을 새로 개발하는 중이다. 희한하게도 새 우주복의 연구를 심해탐구 회사에 맡겼다. 이는 우주에 대해 도전하려면 해양에 대한 탐구도 병행돼야 함을 알려준다.

해양은 우주와 함께 거대과학 분야로서 극한 환경 극복이라는 프런티어 최전선에 서있다. 바닷속 1만m 심해는 오히려 우주보다 더 엄혹한 환경일 수 있다. 누구도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해양 관련 사업인 조선, 인공위성, 신재생 에너지, 원자력, 담수시설 등의 분야에서 장점을 가지고 있어, 다른 해양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우주 강국의 대열에 오른 시점을 맞아 바닷속에 대한 관심을 제고할 필요성이 높다.

마침 해양과학기술원이 수십 년 연구 끝에 '해양여지도'(바닷속 대동여지도)를 완성했다. 연구로 치면 기초과학에 해당되는 분야의 대성과이다. 한반도 주변 전 해역에 대한 3차원 해양 지하공간 개발에 기본적인 자료인데, 고산자 김정호가 1800년대 제작한 대동여지도와 맞먹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해양여지도는 원근감, 음영, 색상을 사용하면서 그리드 시스템이 있어 정확한 탐색이 가능해 당시의 다른 지도와 뚜렷이 차별되는 종합 입체 지도이다. 해양자원도, 해양하천도, 해양단층도 등 총 34종(주제도 11종, 지층구조도 12종 및 등층후도 11종)의 디지털 트윈 지도로 구성되어 있다. 이 획기적인 지도들은 1990년대 초 해양연구선이 도입된 이래로 30년 이상의 해양탐사를 통해 취득한 자료를 분석해 제작됐다. 세계 최초로 자국의 전 해역을 1㎝의 빈틈도 없이 연속적인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했다.

이 지도는 지질역학적, 지구물리학적, 지질학적, 해양학적 데이터를 종합하여 해석한 결과물이다. 약 2,500개 측선으로 구성되어 지구 20바퀴 길이에 해당하는 이 정보는 수만 년의 세월이 흘러도 크게 변화하지 않는 해저지질의 특성에 비춰볼 때 후대에 물려줄 가장 중요한 유산이 될 것이다.

1994년 유엔해양법협약 발효로 해양관할권이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으로 확대되면서 연안국은 생물·비생물 자원 탐사와 경제적 개발에 관한 주권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고, 인공 도서나 해상구축물의 설치와 이용에 대한 관할권도 소유할 수 있다. 따라서 해양여지도는 해양영토를 둘러싼 분쟁과 해양경계 획정에서 과학적인 협상전략 기반 구축을 위한 국가 전략수립의 기초 자료이기도 하다. 2028년 한일공동개발구역(JDZ) 협정 만료, 독도 문제 가속화, 황해에서의 중국 도발, 남북한 접경해역 관리 등 현안 대응책을 고려하면 이 지도들은 경제적으로 따질 수 없는 해양영토 개척 및 국민 자긍심 고양 등의 가치도 지니고 있다.

해양여지도는 바닷속 공간정보 부족을 보완하여 수천억 원 단위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게 하고, 미래 해양개발 사업의 편익 유발 및 관련 산업의 고용도 창출할 것이다. 이 지도들은 연안개발 및 해양구조물 설치 해역(해상풍력, 해저케이블, 파이프라인, 연육교, 항만, 해저터널, 해저도시, 해상도시), 해양자원 및 에너지 부존 해역, 재난재해 해역, 해상 교통안전 및 해군·해경 작전 해역, 해양환경 및 기후변화 해역, 해양레저 해역 등 사용 목적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정확하고 정밀한 디지털 자료를 제공해 준다. 또한 이 바닷속 지도를 통해 해양을 비롯한 산업·외교·국방·과학·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국가 표준자료를 구축할 수 있다.

누리호의 우주 개척이 국민의 심장을 뜨겁게 달군 것처럼 심해 연구의 결과물도 온 국민의 뜨거운 박수를 받을 시점을 기대해 본다.


허식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영토·방위연구부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