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 수호" "사찰 위험"...영장 없는 도·감청 허용 두고 갈라진 미국

입력
2023.08.0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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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외정보감시법 702조 효력 연장 논란
백악관 "재승인 안 되면 최악 정보 실패"
의회, 법 조항 개편 요구...연내 처리 난항


영장 없이 외국인을 도ㆍ감청할 수 있게 한 미국 해외정보감시법(FISA) 702조 연장 여부를 두고 미국 사회가 갈라졌다. 테러 방지와 중국ㆍ러시아 견제 등을 위해 이 조항 효력을 연장해야 한다는 행정부미국인 자유 침해ㆍ사찰 우려를 제기하는 의회가 팽팽히 맞서면서다. 내년 초 702조 효력이 사라지기 전까지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 702조로 테러 막고 중국 견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31일(현지시간) 공개한 성명에서 “의회가 해외정보감시법 702조를 재승인하지 않으면 역사는 702조 권한의 소멸을 우리 시대 최악의 정보 실패 중 하나로 평가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702조는 미국이 본토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정보 도구 중 하나”라며 재승인을 촉구한 것이다.

해외정보감시법 702조는 2001년 9ㆍ11테러를 계기로 논의가 시작돼 2008년 공화당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제정됐다. 정부가 영장을 발부받을 필요 없이 미국 밖에 사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표적 감시를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설리번 보좌관은 “702조의 권한에 따라 획득한 정보 덕분에 미국은 중국이 제기하는 위협을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었고,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잔혹 행위에 맞서 전 세계를 결집시킬 수 있었다”고 밝혔다. △미국에 위해를 가하려는 테러리스트 제거 △마약성 약물 펜타닐 밀수 차단 △랜섬웨어 사이버 공격 완화 등에서도 702조 정보 수집이 효과를 발휘했다고 덧붙였다.

미 NBC방송은 “한 고위 정보 관리에 따르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일일 브리핑에 있는 정보의 거의 60%가 702조에서 파생된 일부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부당 압수수색 금지' 수정헌법 4조 위반 논란

그러나 외국인의 이메일이나 전화, 문자 등 통신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하는 과정에서 이들과 접촉한 미국인 자료도 함께 수집하게 되자 논란이 커졌다. 영장 없는 부당한 압수수색을 금지하는 미국 수정헌법 4조를 위반했다는 지적 때문이다.

특히 미 연방수사국(FBI)이 2020년과 2021년 초에만 미국의 외국인 정보 데이터베이스에서 부적절한 정보를 27만8,000여 차례나 검색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 지시로 702조 효용성을 검토해 온 대통령정보자문위원회(PIAB)도 이날 공개한 보고서에서 미국인 정보와 관련해 FBI가 702조 권한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경우가 있었다고 밝혔다. 수백만 건의 정보 열람 중 위법 행위는 3건으로 확인됐지만 개인 정보를 수사 등에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여전하다.


의회는 법 제정 초기에는 초당적인 지지를 보였지만 정보 오ㆍ남용 사례가 계속 드러나면서 재승인 반대로 돌아서고 있다. 민주당 소속인 딕 더빈 상원 법사위원장조차 지난 6월 청문회에서 “702조에 중대한 개혁이 있을 경우에만 재승인을 지지하겠다”라고 밝혔을 정도다. 공화당은 FBI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수사 후 FBI에 대한 불신으로 702조 효력 재연장을 거부하고 있다.

의회는 702조가 만료되는 연말 전에는 행동을 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702조가 갱신됐던 2018년에도 상ㆍ하원 의원 3분의 1 정도가 반대표를 던졌다고 NBC는 전했다. 양당의 대치가 극심해질 2023년 연말 정국 상황을 볼 때 702조 연장 재승인안 통과는 낙관하기 어렵다.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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