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디 총리 고향서 4억 달러 투자 꺼낸 AMD...'반도체 허브' 향한 인도의 베팅 힘 받나

입력
2023.08.0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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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D "5년 동안 5000억원 투자" 발표
미국 반도체 기업 인도 투자 이어져


엔비디아, 인텔 등과 경쟁하는 미국 반도체 설계 전문(팹리스) 기업 AMD가 인도에 5년 동안 4억 달러(약 5,090억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벵갈루루에 대규모 디자인센터를 짓겠다는 계획이다. AMD의 마크 페이퍼마스터 최고기술책임자(CTO)는 7월 28일(현지시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고향 구자라트주에서 열린 반도체 콘퍼런스 '세미콘인디아'참석해 이 같은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계획대로 된다면 현재 6,500명가량인 인도 내 AMD 직원 수는 약 3,000명 더 늘어난다.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인도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AMD에 앞서 메모리반도체 업체 마이크론도 구자라트에 8억2,500만 달러(약 1조510억 원)를 투자해 반도체 테스트 및 조립 시설을 짓겠다고 했고, 반도체 장비업체인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 역시 4억 달러를 투입해 엔지니어링센터를 건립한다고 발표했다. 인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투자 러브콜을 보내자 미국 업체들이 화답하는 모양새다.




인도 목표는 한국·대만과 경쟁하는 '반도체 제조 허브'


반도체 산업은 중국을 제치고 '세계의 공장' 자리를 꿰차려는 인도가 특별히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다. 모디 총리는 2021년 12월 100억 달러(약 12조7,400억 원) 규모의 육성책을 승인하기도 했다. 인도에 제조 공장을 짓는 반도체 업체에 통 크게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게 핵심이다. 인도는 이를 통해 반도체 시장 규모를 2028년까지 현재의 네 배 수준인 800억 달러(약 102조 원)로 키워 한국, 대만 등에 버금가는 '반도체 제조 허브'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별렀다.

그러나 이런 야심 찬 계획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실패에 가깝다는 게 중론이다. AMD 등이 투자 의향을 밝힌 건 모두 연구나 조립을 위한 시설로 인도 정부가 원하는 제조 공장이 아니라서다.

그나마 인도 정부의 믿는 구석이었던 대만 폭스콘도 인도 투자 계획을 돌연 접었다. 애플의 아이폰 생산업체로 유명한 폭스콘은 지난해 9월 인도 에너지·철강 대기업 베단타와 손잡고 약 195억 달러(약 24조8,520억 원)를 투자해 반도체 제조 공장 등을 짓겠다고 했지만 10일 협력 중단을 선언했다. 두 회사는 유럽 반도체회사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의 기술을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이 업체를 합작 벤처에 참여시키려 했지만 인도 정부가 직접 투자까지 할 것을 요구하면서 협상에 진척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결과적으로 최대 규모의 반도체 관련 투자 프로젝트가 무산됐고 모디 총리의 반도체 허브 야심에도 생채기가 났다.



내수시장, 인센티브 정책 발판 삼아 도약할까


미중 갈등이란 지정학적 이점에도 인도가 반도체 제조국으로 쉬이 도약하지 못하는 건 ①제조 기술력 자체가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인도의 기술 수준은 한국이나 대만과 비교해 20년 정도 뒤져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공급망이 빈약하고 ③정부 승인 절차가 느린 것도 약점으로 지적된다. 투자는 하겠다면서도 정작 제조를 맡기겠다는 업체가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성장 가능성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거대한 내수 시장과 인센티브 정책 같은 정부의 유치 노력 등 강점이 분명해서다.

인도 투자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듯했던 폭스콘의 고위 관계자들은 이번 세미콘인디아에 참석해 단독으로라도 투자 계획을 이어갈 것임을 시사했다. 모디 총리는 개회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활기찬 시장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누구나 인도를 신뢰하고 있다"고 적극적으로 세일즈했다. CNBC는 이를 두고 "인도가 AMD의 투자를 계기로 다른 기업들의 투자 유인에 시동을 걸고 있다"고 평했다.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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