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사회가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배타적 민족주의자, 유대교 근본주의자 등 극우 세력이 섞인 연립정부가 사법부를 무력화하는 입법 절차를 마무리하면서 사실상 독재 정권으로 들어설 채비를 하자, 시민사회가 ‘타자와의 공존’이라는 가치와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 없다며 들고 일어선 것이다. 그 결과, 주가는 급락했고 안보 공백마저 가시화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혼란상이 뚜렷해지면서, ‘노련한 정치인’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연정 통제력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진단이 나온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우파 연정이 최근 대법원의 행정부 견제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사법 정비’ 법안을 끝내 일방 처리한 뒤 이스라엘 사회에 펼쳐진 풍경은 그야말로 대혼돈이다.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자마자 반대 시위 규모가 다시 확 커졌고, 의사와 예비군이 각각 파업과 복무 거부에 들어갈 참이다.
공동체는 쪼개졌다. 25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법 정비에 의해 자유민주주의 근간이 훼손될 것을 우려하는 세속적 일반 대중과, 자유주의 성향 판사들이 점령한 법원이 자주 국민의 뜻을 뒤집는다고 여기는 종교적·국수적 성향의 유권자로 이스라엘 사회가 분열됐다”고 분석했다.
대표적 여파가 경제 지표의 악화다. WSJ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주요 주가 지수인 ‘TA-35’는 법안 통과 다음 날인 이날 3%나 하락했다. 같은 날 이스라엘 화폐인 셰켈화 가치는 달러화 대비 1.3% 떨어졌다. 한 정보기술(IT) 스타트업 업체 대표는 WSJ에 “예측 가능하지 않은 이스라엘에 왜 투자해야 하는지 투자자들이 의문을 가질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안보도 흔들린다. 이스라엘군 전력의 큰 부분인 예비군 수천 명이 자발적 복무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런 시위가 △훈련 부족으로 군 준비 태세를 약화시키고 △사병 간 견해차에 따른 긴장감을 형성하며 △적들을 대담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이스라엘 관료를 인용해 26일 보도했다.
불안은 국가 경쟁력을 잠식한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당장 보고서를 통해 “고조된 정치·사회적 긴장이 이스라엘 경제와 안보 상황에 부정적 영향을 유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도 이스라엘의 국가신용등급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설상가상 미국 정부의 압박도 난제다. 서두르지 말고 광범위한 합의를 도출하라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경고를 묵살한 네타냐후 정권을 겨냥해 24일 백악관은 “유감”이라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25일에도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스라엘 내 정치적 합의를 촉구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 초청을 받은 네타냐후 총리의 미국 방문이 무기한 미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왜 네타냐후 총리는 전략적 실용주의 대가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곤경을 자초했을까. 그의 성향은 중도 우파라는 게 줄곧 세간의 평가였고, 이번 입법 강행이 그의 의지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연정 내 극우 인사들에게 휘둘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25일 미 워싱턴포스트(WP)는 4석만 이탈해도 과반 의석(61석)이 유지되지 않는 소수 연정의 태생적 한계와 네타냐후 총리 개인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로 배경을 해석했다. 우선 이번 입법 추진은 고육책일 공산이 크다. 한때 부패 추문으로 실각했던 네타냐후 총리가 정권을 다시 잡으려 정치권 ‘변두리’로 여겨지던 극우 정치인들과 지난해 손을 잡았고, 사법 정비 법안 수정 요구가 있을 때마다 연정에서 탈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치고 버틴 게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질론’이 전부는 아니다. 현재 부패 혐의로 재판받고 있는 처지임을 감안할 때 사법부 권한 위축이 자신에게 불리하지 않다는 판단을 네타냐후 총리 본인이 했을 수 있다는 게 WP의 추측이다. 미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브렛 스티븐스는 “연정과의 야합을 통한 법적 면책 도모가 네타냐후 총리의 이번 시도였다”며 “그가 그러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이 국가 붕괴 수준의 역경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