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도 29번째로 합류... 아프리카 '사형제 폐지' 물결 거센 이유는?

입력
2023.07.2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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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는 식민 유산" 거부감 커
대량학살에 대한 '반면교사' 영향
사형 집행은 아시아 국가에 집중

서아프리카 가나가 25일(현지시간) 의회의 사형제 폐지 법안 통과로 아프리카에서 29번째로 사형제를 없앤 국가가 됐다. 전 세계에선 124번째다. 이 법안을 발의한 프란시스-자비에르 소수 국회의원은 “가나 인권 기록에 큰 진전을 이룬 것”이라고 자평했다. 아프리카 전역에서 부는 ‘사형제 폐지 바람’을 탄 결과다. 내전과 대량학살이 끊이지 않는 이 지역에서 어떻게 이 같은 ‘인권적 행보’가 가능한 것일까.

영국 BBC방송과 로이터통신은 이날 가나 의회의 결정을 전하며 “적도기니, 시에라리온,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잠비아와 함께 최근 2년간 사형제를 없앤 아프리카 국가에 이름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사실 가나는 1993년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실질적 폐지국이긴 했다. 하지만 살인·반역·대량학살엔 의무적으로 사형을 선고해야 하는 규정 탓에 지난해 기준 사형수가 176명이나 됐다. 이들은 종신형 무기수로 바뀐다.

“대량학살 바로잡으려 사형집행자 될 순 없어”

이로써 아프리카연맹(AU) 54개국 중 사형제 폐지국은 절반을 훌쩍 넘게 됐다. 1999년 아프리카인권위원회(ACHPR)의 사형금지 결의안 채택 등 대륙 차원의 활발한 논의가 낳은 결실이다. 독재와 인종 갈등, 대량학살 등에 시달린 아프리카의 ‘잔혹한 역사’가 반면교사가 됐다.

2007년 사형제를 폐지한 르완다가 대표적이다. 1994년 내전으로 최소 80만 명이 학살된 이후 집권한 폴 카가메 대통령은 “대량학살을 바로잡기 위해 정부가 ‘무더기 사형’의 집행자가 될 순 없다”며 사형제를 폐지했다. 2011년 10월 연설에선 “사형 폐지가 르완다인에게 새 삶을 안겨주고 사회 치유에 기여했다. 지난 5년간 범죄도 감소했다”고 말했다.

사형제는 서구 식민지 유산… “통제 수단으로 악용”

아프리카에서 사형제 폐지 바람이 거센 건 ‘사형제는 식민지 잔재’라는 인식이 뿌리 깊기 때문이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사형제는 식민지배 강화를 위해 고안된 백인 우월주의의 도구였으며, 애초 아프리카의 것이 아니었다”고 보도했다. 제국주의 시절, 서구 열강이 손쉬운 통제를 위해 사형을 집행하며 공포를 심었다는 얘기다.

실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가 행해졌을 때, 사형수의 95%는 흑인이었다. 사형을 선고한 이는 모두 백인이었다. 남아공은 1990년 아파르트헤이트 폐지와 함께 사형제도 철폐했다. 2021년 시에라리온의 사형제 폐지 당시에도 외신들은 “영국에서 독립한 서아프리카 국가 중 첫 조치로, 아프리카 국가들은 식민지 유산인 사형제에 대한 거부감이 커서 폐지에 박차를 가한다”고 분석했다. 가나도 영국 식민지였다.

사형 집행 많은 대륙은 ‘아시아’

이제 사형 존치국은 아시아에 집중돼 있다. 최다 집행국은 중국이다. 2019년 국제앰네스티 집계에 따르면, 매년 중국에서 1,000건 이상의 사형이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이집트, 미국이 뒤를 이었다. 영국 가디언은 싱가포르에서 오는 28일 여성 마약사범의 사형이 집행될 예정이라고 이날 전했다. 싱가포르는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이란과 함께 지난해 마약 범죄자에 대해 사형을 집행한 국가이기도 하다.

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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