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에 TK(대구·경북) 출신인 김동일 경제예산심의관을 임명했다. 진보, 보수 정부를 막론하고 호남, 영남 등 핵심 지지 지역 기반의 '예산맨'에게 나라 곳간을 맡기는 관행은 이번에도 되풀이됐다.
기획재정부는 23일 김 실장 외에 차관보에 김범석 정책조정국장, 세제실장에 정정훈 조세총괄정책관, 재정관리관에 임기근 예산총괄심의관을 선임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김완섭 예산실장을 2차관으로 승진시키고 관세청, 통계청, 조달청 수장에 기재부 출신을 인선하면서 비어 있던 핵심 간부 자리를 채우는 인사다.
가장 주목받는 자리는 600조 원대의 정부 예산 편성 작업을 진두지휘하는 예산실장이다. 기재부 내에선 일찍부터 차기 예산실장을 두고 영·호남 대결이라고 설왕설래했다. 예산실장으로 예산실 내 국장급 5명 가운데 선임인 임기근 당시 국장보다 김동일 국장이 더 가깝다는 하마평이 나왔다. 예산실 선임 국장이 예산실장 1순위라는 과거 인사와 반대 평가다.
영남을 기반으로 한 윤석열 정부가 경북 경주에서 태어난 김동일 국장을 광주가 고향인 임기근 국장보다 중용할 것이란 전망에서다. 결국 나라 곳간지기만큼은 '상대 정당 지역 사람'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정치권 불문율은 이번에도 견고했다. 역대 정부가 예산실장, 국장급은 물론 실무진인 과장급까지 지지 지역 출신을 앉히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일종의 지역주의 인사다.
다만 지역 구도로 이번 인사를 해석하는 건 협소하다는 시각도 있다. 김동일 실장이 '예산실 간판'으로 충분한 자질을 갖췄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예산총괄과장을 거치는 등 예산 업무에 잔뼈가 굵은 데다 윤석열 정부 출범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파견, 국정과제 밑그림을 그렸다. 정부는 임기근 국장 역시 예산실장과 동급인 재정관리관으로 승진시켜 체면을 세워줬다.
정정훈 신임 세제실장은 세제 업무만 파고든 '세금 박사'로 통한다. 이달 초부터 세제실장이 공석인 가운데 정부가 곧 발표 예정인 '2023년도 세법개정안'을 사실상 완성했다. 세제실 직원들이 믿고 따르는 선배 관료로 과장 시절 이미 기재부 노조가 선정하는 '닮고 싶은 상사'에 3번 선정돼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