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허가에 생태 훼손까지··· 파크골프장 ‘민망한 굿샷’

입력
2023.07.23 10:30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파크골프장' 조성 
국가하천 내 파크골프장 과반이 불법 시설물
대부분 하천 '전이 지대' 위치해 생태 훼손 불가피
원상복구 명령에도 아랑곳 않고 '무허가 라운딩'


“어차피 노는 땅인데, 나와서 골프도 치고 잘 이용하면 좋은 거지. 안 그래요?”

지난 10일 대구 달성군의 낙동강변에 위치한 하빈 파크골프장 초입에서 만난 이용객 A씨는 격앙돼 있었다. 골프채를 든 그의 뒤로 ‘파크골프장 출입 금지’, ‘본 구장은 허가받지 않은 시설로서...’ 등의 문구를 담은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지자체가 관리·운영하는 공공체육시설인 이곳은 지난 2월 하천점용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시설로 밝혀지며 폐쇄 조치되었지만 장마가 소강상태를 보이며 모처럼 날이 갠 이날 시민들의 ‘무허가 라운딩’은 해 질 녘까지 이어졌다.


파크골프장이 하천구역을 무단 점용한 것은 어느 한두 곳만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지난 6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이 환경부에서 받은 국가하천 내 파크골프장 전수 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체 88곳 중 56곳(64%)이 불법인 것으로 드러났다. 40곳은 환경당국에 하천점용허가를 받지 않았고, 16곳은 불법 확장한 경우였다. 환경부는 불법 조성된 파크골프장에 대해 원상복구를 명령하고 하천점용허가 신청 등 적법한 절차를 거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파크골프는 파크(park)와 골프(golf)의 합성어로 공원에서 치는 미니 골프의 일종이다. 비교적 시간·장소 제약이 적고 ‘값싸게 즐길 수 있는 골프’라는 인식이 퍼지며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스포츠다. 대한파크골프협회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으로 전국에 파크골프장은 361곳에 이른다. 소속 회원 수는 지난해 기준 10만6,500명으로 전년 대비 1.5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파크골프장 증설 공약이 단골로 등장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대구시는 이른바 ‘금호강 르네상스’ 사업의 일환으로 내년까지 금호강 둔치 6곳에 파크골프장을 108홀 규모까지 신설·확장할 계획을 밝혔다.

실제 현장 분위기는 파크골프의 높은 인기를 반영하고 있었다. 지난 17일 찾은 경북 영천시 금호강변의 오수 파크골프장은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우중 라운딩을 즐기는 이들로 만원을 이뤘다. 주차장은 수용 능력을 한참 초과하며 주변 차로에는 불법 주차된 차량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이곳 파크골프장 역시 환경당국 조사에서 무허가 시설로 밝혀지며 원상복구 명령이 떨어졌지만 수개월째 아무 조치 없이 정상 운영 중이다.

전국 강가마다 파크골프장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는 가운데 환경 훼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또한 나온다. 지난 2월 대구 북구 사수동 금호강 일대 파크골프장 조성 부지에서는 법정보호종인 삵(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과 수달(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천연기념물 330호)이 환경운동가가 설치한 무인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공사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 10일 직접 살펴본 공사 현장에서는 수달의 것으로 추정되는 발자국과 배변 흔적이 확인됐다. 반면 대구 북구는 지난 6월 이곳에 대한 두 달간의 추가 생태환경 조사에서 수달 등 법정보호종의 서식지를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향후 공사를 진행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은 “극히 일부 시민들의 여가 활동을 위해 지자체가 나서서 공유지를 점용하고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 서식지를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생태학자 김산하 박사는 “하천은 ‘불어났다’ ‘줄어들었다’를 반복하는 역동성을 갖고 있다”면서 “골프장이 들어서고 있는 둔치도 하천 공간의 일부로서 주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부분 동물들이 하천과 육상 사이에 존재하는 이 전이지대에 의존하고 있다”면서 “이곳을 ‘노는 땅’으로 보는 건 지극히 인간의 관점이다”라고 덧붙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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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에겐 말을 타고 달리다 '멈칫' 말을 세우고 내려 뒤를 돌아보는 오래된 의식이 있었습니다. 발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하상윤의 멈칫]은 치열한 속보 경쟁 속에서 생략되거나 소외된 것들을 잠시 되돌아보는 멈춤의 시간입니다.
하상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