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라도 고모부가 ‘소주 한잔 하자’며 걸어 들어오실 것 같아요.”
16일 충북 청주시 한 종합병원 로비에서 만난 40대 박모씨가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박씨의 고모부는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침수로 고립된 ‘747번 급행버스’의 운전기사였다. 생존자 증언 등을 보면 그는 버스에 물이 차오르던 순간까지 "창문을 깰 테니 나가라"며 승객들에게 탈출을 독려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누구보다 성실히 시민들의 발 역할을 자처했던 고모부의 실종 소식에 발을 동동 구르던 그는 수습된 희생자 시신들이 이 병원으로 옮겨져 신원 확인 절차를 거친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러나 고모부를 찾지는 못했다. 박씨는 “나이 차이가 많지 않은 고모부와 유독 친하게 지냈다”며 “이번 주말 다 같이 가족 여행을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병원엔 박씨처럼 실종자를 기다리는 가족들과 시신을 확인한 유족들의 울음으로 가득했다. 이들은 애타는 마음에 눈물을 쏟다가도 서로에게 휴지와 물을 건네며 함께 버텼다. 병원 관계자들이 실종자 가족들에게 “병상에 누워 계셔도 된다”고 권유했지만 모두 딱딱한 로비 의자를 고수했다. 새로운 소식이 들리면 조금이라도 빨리 일어서기 위해서였다. 응급의료센터 입구 앞에 자리 잡은 가족들은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구급차가 들어올 때마다 숨을 죽였다.
이 병원에서 약 2Km 떨어진 같은 병원 장례식장도 비통한 분위기였다. 지금까지 수습된 9명의 희생자 중 4명의 빈소가 이곳에 차려졌다. 오전에 경찰 연락을 받고 조카 사망 소식을 알게 됐다는 외삼촌 정모(52)씨는 “부모가 길거리에서 호두빵 장사를 하며 조카를 키웠다”며 “조카가 최근 취업에 성공해 가족, 친척들이 누구보다 기뻐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며 망연자실했다.
그의 조카는 이날 747번 급행버스를 탔다가 변을 당했다. 정씨는 “캄캄한 버스 안에서 차가운 물에 갇혀 있었을 조카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며 “주말마다 부모 장사를 도울 정도로 효심이 깊은 아이였다”고 또 눈물을 쏟았다.
희생자 중엔 결혼식을 올린 지 불과 2개월밖에 안 된 새신랑 김모(30)씨도 있었다. 유족 등에 따르면, 고인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초등학교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이룬 건실한 청년이었다. 빈소에서 만나 어렵게 입을 연 매형 유씨는 “자신의 반 아이들을 사랑하고 정직하게 가르친 초등학교 교사였다”고 했다. 사고 당일도 궂은 날씨에 임용고시를 보러 가는 처남을 데려다 주기 위해 선뜻 운전대를 잡았다가 변을 당했다.
가슴이 찢어진 실종자 가족과 유족들은 구청 직원들의 안일한 해명과 정부의 불통 행정에 또 한 번 상처를 받았다고 토로했다.
처남을 잃은 매형 유씨는 청주 흥덕구청 직원들이 빈소로 찾아와 유감을 표하면서도 “도로가 2019년에 신설됐는데, 올해까지 4년간 한 번도 이런 사고가 없었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한다. 그는 “이태원 참사처럼 누군가 죽어야만 대비를 하겠다는 말로밖에 안 들렸다”며 “이 사고는 후진국형 시스템이 만든 후진국형 인재다. 장례를 치르고 정식 항의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모부가 실종된 박씨도 “아무도 뭘 알려주지 않아 가족들끼리 장소를 나눠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시신이 수습됐으면 실종자 가족들에겐 인상착의나 병원 등 최소한의 정보는 알려줘야 하지 않느냐”고 성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