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은 750년 동안 수도의 자리를 지키는 유서 깊은 도시다. 유럽 대부분을 지배하며 기세등등했던 합스부르크 왕가 시절에는 유럽의 수도로 불렸다. 그만큼 볼거리와 문화유산이 많아 유럽의 주요 관광지로 꼽히는데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이 발달한 곳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약 6,500개 ICT 업체가 몰려 있는 빈의 ICT 산업은 관광산업보다 4배 이상 매출이 많다.
그만큼 빈은 신생기업(스타트업) 육성에도 적극적이다. 지난 5월 30일부터 6월 7일까지 빈의 12개 지역에서 열린 국제 스타트업 박람회 '비엔나 업23' 행사는 96개국에서 1만4,000명이 참석,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하며 큰 관심을 끌었다. 지난해 전 세계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빈의 스타트업들은 10억900만 유로(약 1조4,4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중요한 것은 오스트리아 스타트업들의 특징이다. 국내 금융기술(핀테크) 분야의 스타트업 해빗팩토리 분석에 따르면 오스트리아는 친환경 기술 및 사회적 기업 등 환경, 사회, 지배구조 개선(ESG) 분야의 스타트업들이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등 딥테크 분야 못지않게 투자를 많이 받았다.
2011년 이후 오스트리아에 등장한 스타트업 3,300개 가운데 33%가 친환경 스타트업이며 16%는 사회적 기업이다. 반면 한국은 지난해 기술 분야에 2조2,800억 원의 투자가 몰린 데 비해 친환경 및 사회적 기업 분야의 투자 유치는 2,666억 원에 그쳤다.
오스트리아는 오래전부터 환경 보전에 관심이 컸다. 개발할 수 없도록 환경 보전 지역으로 묶인 비너발트(빈 숲)는 서울시 면적의 두 배 크기다.
빈의 배달 서비스에서도 친환경 정책을 읽을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늘어난 빈의 배달 서비스는 주로 자전거를 이용한다. 빈 중심가인 링 슈트라세를 다녀 보면 유니폼을 입은 배달 서비스업체 직원들이 잘 발달된 자전거 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달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오스트리아는 원자력발전소도 짓자마자 폐쇄했다. 오스트리아는 1978년 빈 인근 츠벤텐도르프에 원자력발전소를 지었지만 핵 폐기물 논란이 일자 한 번도 가동하지 않고 폐기했다. 뿐만 아니라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핵 발전으로 생산한 전력을 수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오스트리아는 이 같은 방향을 스타트업 육성에도 반영해 관련 스타트업에 창업 자금을 지원하고 세금을 깎아주는 등 정책적으로 밀어준다. 덕분에 오스트리아의 스타트업들은 ESG 및 스마트 시티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수질 오염을 막기 위해 감시 시스템을 개발한 스캔, 순환 경제 솔루션을 개발한 서큘러 애널리틱스, 지속 가능한 도시 개발을 디자인하는 그린4시티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전 세계 시장을 상대로 했을 때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된다. 미국 유럽을 비롯해 선진국의 투자업체들은 MZ세대들이 큰 관심을 갖는 ESG를 투자 결정의 주요 지표로 꼽는다. 그렇다 보니 세계적 기업들도 ESG 투자를 늘리며 거래기업에 ESG 준수를 요구한다.
우리도 ESG를 과거 사회봉사 활동처럼 구색 갖추기가 아닌 기업의 경쟁력으로 봐야 한다. 아울러 관련 스타트업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정책적 배려도 중요하다. 아무리 국내 스타트업들이 빈처럼 자전거 배달을 하고 싶어도 자주 끊기는 서울의 자전거 도로에서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ESG를 위한 기반 시설 확대도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위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