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혁명 이듬해인 1790년 영국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을 펴내며 다른 목소리를 낸다. 모든 시민이 기본권을 내세우며 무정부 상태를 만들어도 절대평등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권위의 공백상태는 오히려 전제정의 출현을 가속화할 뿐이란 주장이다. 그의 예견대로 1799년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프랑스 정권을 잡는다. 버크는 국가 전복이 아닌 인구증가와 같은 사회문제의 근본 개혁이 합리적 변화라고 설파했고, 근대 보수주의의 아버지가 됐다.
미국 역사학자 조지 H. 내쉬가 쓴 ‘1945년 이후 미국 보수주의의 지적 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주의가 만개한 가운데 인기 없던 보수주의를 뿌리내리게 한 미국판 ‘에드먼드 버크’들에게 주목한 책이다. 저자는 자유·개인주의, 민간기업 전성기였던 당시 보수주의 설계자들이 고유의 가치를 지키려고 저항함으로써 미국의 보수주의를 성숙하게 했다고 평가했다.
여기에는 끊임없는 지적 탐구가 뒷받침됐다. 이들은 버크의 사상을 비롯한 유럽 보수주의의 자양분을 흡수하긴 했지만, 그 뿌리를 조국에서도 찾아냈다는 분석이다. 미국 남부 지역에서 기독교 전통, 사회적 위계질서, 자치 의식 등의 가치를 찾아낸 것은 건국의 아버지들이었다. 이는 자유주의와 결합해 독립선언문, 헌법, ‘연방주의자 논고’ 등에 담겼다.
이를 토대로 한 보수주의자들의 강한 행동력도 뒤따랐다는 평이다. 밀턴 프리드먼을 비롯한 시카고학파는 자유주의 원리에 기초해 실용적 경제프로그램을 창안했고, 재단과 싱크탱크 등을 통해 정치세력을 규합하고 조직화했다. 지적 탐구와 실천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의 보수, 혹은 이에 반대하는 이에게도 권할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