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8세. 청소년과 성인의 경계에 있는 나이에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이들이 있다. 자립준비청년들이다. 이들은 아동복지시설, 공동생활가정, 위탁가정 등의 보호를 받다가 만 18세에 보호가 종료되면 사회로 나서야 한다.
지난달 종영한 공영방송 50주년 특별기획 KBS1 '장바구니 집사들'은 이들을 실질적으로 도와주기 위해 식재료가 가득 담긴 장바구니에 주목했다. 신선한 식재료가 담긴 장바구니로 청년들이 건강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안부를 물으며 내면의 외로움까지 돌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 아나운서 출신 예능인 장성규(40)와 임용고사 준비생 '김볶남'(프로그램에서 사용한 닉네임) 배영주(22)씨도 그렇게 '장바구니'를 통해 만났다.
"20대 때 저는 늘 불안했거든요.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때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영주는 달라요. '내면이 정말 강하구나' 매번 감탄해요."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장성규가 한 말이다. 멘토와 멘티처럼 서로를 다독였던 두 사람은 그사이 친근해져서인지 형제 같아 보였다. 옆에 있던 배씨는 "형(장성규)의 안부를 묻는 연락에 답장을 제대로 못 해 미안하다"며 쑥스러워했다.
배씨의 사연이 감동을 준 것은 순탄치 않았던 과거를 용기를 내 고백했기 때문. 그는 자신을 보살펴 주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에게 돌아갔지만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했다. 친구들에게조차 털어놓지 않은 과거를 방송에서 말할 용기를 낸 건 '나를 보며 혹시 위로받을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배씨처럼 매년 사회로 나오는 자립준비청년은 2,500여 명에 달한다.
학창시절 자신을 돌보아 준 위탁 가정 어머니는 든든한 울타리가 돼주었지만 보호가 종료되는 나이인 만 18세엔 그 역시 혼란스러웠다. 배씨는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살아야 하지' 걱정뿐이었다. 속마음을 털어놓는 성격도 아니라 더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용기 내 도움을 청하자 지역 사회복지사들이 발벗고 나섰다. 많은 자립준비청년들이 사회적 고립으로 고통을 겪는 것과 비교하면 배씨는 운이 좋았다. 그가 교사를 꿈꾸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사회로부터 많은 걸 받았는데, 돌려주지 않으면 마음에 평생 걸릴 것 같았다"면서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선생님이 돼 사회에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꿋꿋하게 자립준비를 하는 배씨를 보며 장성규 역시 "20대의 자신을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지금은 예능인으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지만 그 역시 MBC 아나운서 선발 오디션 프로그램 '신입사원'(2011)에 지원했다가 최종 3인에서 탈락한 뼈아픈 '취준생'(취업준비생) 시절이 있었다. 장성규는 "청년 시절 제가 얼마나 자존감이 바닥이었는지 생생하다"면서 "최근 스스로 돌아볼 시간이 많이 부족했는데 영주를 비롯해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서 과거의 나와 이야기 나누는 느낌이 들더라"고 말했다.
1개월간 진행된 6부작 프로그램이었지만 반향은 컸다. 1개당 4만8,500원인 장바구니 2,500개 모금을 목표로 시작했는데 지난 7일 기준 목표액(약 1억2,000만 원)을 훌쩍 넘겨 2억1,600만 원을 모았다. 장성규는 혹시라도 방황하고 있을 다른 청년들에게 배씨의 모습이 큰 힘이 됐으면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