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진정한 우파라면 성소수자 차별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그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자유주의를 부정하는 일이다. 이 나라가 도덕적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라면, 개인이 타고난 성적 정체성과 지향을 억압해선 안 된다. 그 억압은, 자유주의자 칼 포퍼 식으로 말하면 '닫힌 사회의 순진함으로 가려는 깡패 행위'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퀴어 축제에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등 주요 서방 국가들의 대사관이 부스를 차렸다. 우리가 가치 동맹을 추구하는 상대국들이다. 그들과 함께 지키고자 하는 가치에서 성소수자를 위한 자유와 인권의 항목은 누락됐는가.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퀴어 축제에 서울 광장을 내주지 않았던 오세훈 시장은 이쯤에서 자신이 진정한 자유주의자인지 자문해봐야 한다.
사랑과 연민을 믿음의 근본으로 삼는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성소수자들에게 너그러워야 마땅하다. 예수는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했지, 마음 가는 이웃만 골라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다. 이동환 목사는 2019년 인천 퀴어 축제에서 성소수자를 위한 축복 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교단에서 정직 2년의 징계를 받았다. 지난해 복직했지만 올해 또다시 교회 재판에 넘겨졌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한 대가다. 성소수자를 공동체 밖으로 밀어내는 한국 기독교의 집요한 배제와 혐오는, 믿음을 가장한 폭력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최근 법원이 적법하다고 판단한 퀴어 축제를 행정력을 동원해 저지하려다, 이를 지키려는 경찰과 충돌했다. 하지만 홍 시장은 그전에 대구 이슬람 사원 건립을 방해하는 세력에 대해 "이슬람 포비아를 만들고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짓"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그때, 자유주의의 다원적 가치를 옹호하며 소수자 편에 선 홍 시장의 신념을 나는 높이 샀다. 하지만 퀴어 축제에 대해선 선택적 혐오를 드러냈다.
홍 시장의 이율배반이 안타깝지만 아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우리 모두는 이성과 본능, 합리와 편견 사이에서 늘 갈등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관용정신'을 강조한 홍 시장의 열린 태도가 쇼가 아니었다면, 언젠가는 성소수자들에게도 포용의 손을 내미는 회심(回心)의 때가 올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뉴욕, 런던, 파리 시장처럼 홍 시장도 퀴어 축제에 나와 무지개 깃발을 흔들 날이 오길 기대한다. 그때 오세훈 시장도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
몇 해 전 캐나다 밴쿠버에서 퀴어 페스티벌을 가족들과 함께 본 적이 있다. 행사장뿐 아니라 도시 전체가 축제였다. 주택가와 상점 곳곳에 연대의 깃발이 걸려, 가는 곳마다 온통 무지개 물결이었다. 두 딸은 퍼레이드 행렬에 함께하다, 도심 교회에서 나눠주는 생수를 받았다. 아이들은 그 물을 '성수(聖水)'라 했다. 교회가 성소수자들을 환대하는 순간이 거룩했기 때문이겠다. 퍼레이드의 종착지는 '선셋 비치'였다. 거기서 연인처럼 보이는 할아버지 두 분이 따뜻하게 손을 잡고 걸어갔다. 낯설었지만 경건했다. 저 오래되고 다정한 존재의 연대가 사랑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사랑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이 스쳐갔다. 내 삶이 껍질 하나를 벗는 순간이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편견은 곧 부끄러운 구태가 될 것이다. 많은 나라들이 앞서 그렇게 됐고, 우리도 그리로 가는 중이다.